민주당 한화갑 최고위원이 새해 들어 달라졌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대권과 당권 중 어느 쪽을 목표로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아예 더 이상 묻지도 말라는 듯 고집스럽게 고개를 내젓곤 했다.그런데 이제는 "때가 되면 대답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는 평면적 뜻 보다는 오히려 때를 기다리면서, 때를 준비하겠다는 '의지적 요소'가 짙게 묻어난다.
그가 올해를 "정치적 사상과 철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해로 삼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 나를 연마하는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이러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다.
한 최고위원은 자신의 정치적 지침은 '원칙과 순리, 화합'이라고 말한다. 이 3대 지침은 그 우선순위가 때로 변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현안에 대한 입장을 설명할 때는 그런대로 상호 보완적이다.
그는 의원 이적 문제에 대해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은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하면서도 "국민을 실망시킨 것은 죄송하며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동정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라며 말한다.
안기부 선거자금 사건과 관련해선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못박은 뒤 "정치적 고려가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여야가 물밑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 같은 화법은 원칙론에 무게를 실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온건ㆍ대화론자로서 문제를 풀어가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현안에 대한 현실적 접근,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조심스러움은 한 최고위원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동교동계다.
그는 지난해 동교동계가 갖는 가능성과 한계를 가장 극명한 방식으로 체험했다. 동교동계가 뒷심이 된 최고위원 경선에서의 1등, 영광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당을 뒤흔든 동교동계의 2선 퇴진론, 그 와중에 불거진 동교동계 내부의 갈등.
이같은 모순적 상황 속에서 한 최고위원도 한 때 흔들렸던 것 같다. 지난해 말에 김대중 대통령을 독대, 최고위원직 사퇴의사를 밝힌 것은 '흔들림'의 결과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정치적 승부수였을 것이다. 사퇴는 만류됐고 그는 이제 변화와 도약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가 "경선 1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 데서 동교동계의 갈등이 비롯된 측면이 있다"면서 "동교동계뿐만 아니라 당의 화합을 다지는 데 앞장 설 것"이라고 말한 것은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한 최고위원이 동교동계의 대표성을 확보했다고 해도 그 자체가 벗어야 할 또하나의 멍에다. 과거 '영남정권'에서 영남인사가 대권을 얘기하던 것과는 또 달리 '호남정권'에서 호남출신 동교동계 인사가 대권을 언급하는 것에 대한 당 안팎의 거부감을 어떻게 극복할 지가 숙제다.
한 최고위원은 그 가능성을 '국민의 정부'의 성공에서 찾고 있다. "개혁의 추진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국민의 불만을 샀던 여러 전선이 정돈돼 가고 있다"면서 "이제 국민적 에너지를 경제회복에 집중하면 해 볼만 하다"고 말한다.
동교동계의 울타리를 떠나 대중적 정치인으로 발돋움 하려는 웅대한 구상의 성패는 결국 그 자신의 정치력과 리더십에 달려 있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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