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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립스틱 짙게 바른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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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립스틱 짙게 바른 남편

입력
200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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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도 잘 지워지지 않는 립스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딸아이에게 말했더니 값이 비싸지 않았다며 하나를 사왔다.그 립스틱은 모양새나 빛깔이 마치 입술이 텄을 때 바르는 크림과 비슷했지만 바르고 나면 빨간 빛이 매혹적이어서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얼마전 추운날 남편이 새벽출장을 서두르며 그 립스틱을 건조방지용 크림으로 잘못 알고 입술위에 대충 문지르고 떠나는 일이 일어났다.

수원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오는데 전철 안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보며 웃더란다. 눈 마주치기가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지만 시선이 계속 자신에게 쏟아지고 낄낄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쉰다섯의 나이에 시원스런 대머리는 광채가 번뜩거릴 뿐 아니라, 기골이 장대해 남들이 장군 스타일이라고 하는 신사가 입술에는 새빨간 립스틱을 덕지덕지 아무렇게나 바르고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나 역시 그런 사람을 정상인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니 누가 감히 말을 붙여 오거나 거울 좀 보라고 일러 줄 수가 있었겠는가.

아무튼 전철에서 내린 뒤에도 고속버스 터미날 매표소 아가씨를 비롯, 가는 곳마다 자기를 보고 웃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는데 남편은 단지 남다른 대머리가 코믹해 보여서라고 여겼다고 한다. 고속버스 안에서도 역시 시선은 자신에게 쏟아지더란 것이다.

그때부터는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단다.

그런 모습으로 목적지인 남원에 도착해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주인 아줌마도 남편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대뜸 "아줌마! 내 얼굴에 뭐가 붙었어요?"하고 묻자 아주머니는 주방으로 숨어버렸다. 그런데 그 때 식당 안 손님들 가운데 꼬마 하나가 "엄마! 삐에로다, 삐에로"라고 소리치며 좋아했다.

남편은 정말 삐에로가 나타난 줄 알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배달갔다 오던 아줌마가 남편을 향해 "아저씨! 거울 좀 보세요"하고 소리치며 웃었다고 한다. 그때서야 남편은 거울을 보며 자신이 삐에로가 된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한번의 소동으로 끝났지만 그날 일은 남편에게 좋은 경험이 됐다. 꾸밀 줄도 모르고 대충대충 옷을 입고 하던 남편이 그날 이후에는 외출하기 전 거울에 반드시 자기모습을 비춰보는 버릇이 생겼으니까. 오늘도 남편은 깔끔한 모습으로 출근을 했다.

김해숙 경기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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