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만에 임신한 부부 아이는 하루밖에...동화 같은 풍경, 원색적 슬픔. '하루' (감독 한지승)는 이 둘을 하나로 합쳤다. 직접적이고 강한 멜로 소재를 선택했지만 그 표현만은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풀겠다는 것이다. '3류 멜로' 라는 소리가 듣기가 싫었다.
결혼한지 5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 석윤(이성재)과 진원(고소영). 그들은 2001년의 신세대이고 먼지 하나 없는 깔끔하고 흐트러짐 없는 공간과 손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물건에는 생활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반면 가족관에 관한 한 그들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다. 특히 진원이 그렇다. 꼭 자식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내 자식이어야 한다. 출장지에까지 석윤을 쫓아가 배란기에 맞춰 임신을 하려고 애를 쓴다.
'아이 만들기' 에 지친 석윤이 '입양' 이란 말을 꺼내면 "나는 내 아기를 갖고 싶단 말이야" 라고 앙칼지게 소리친다.
영화는 그가 고아와 다름없이 자랐기에 피붙이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가 자신을 친자식처럼 기른 이모를 머쓱하게 만든다.
'하루'는 아이 없는 애처로움, 아이를 가진 기쁨, 그리고 임신한 아이가 낳아도 하루밖에 못 사는 무뇌아란 사실에 대한 절망으로 짜여진 3막극의 전형적인 멜로물이다.
안타까움은 기쁨을 크게 하고, 기쁨은 이 영화의 목표점으로 이어질 슬픔을 크게 한다.
임신 실패로 실의에 빠진 진원을 위로 하기 위해 어린애처럼 재롱을 떨거나 필요 이상의 원맨쇼를 해야 하고, 임신의 기쁨을 위해 사랑이 듬뿍 담긴 육아일기와 화려하게 꾸민 아이의 방이 등장한다.
삼신할미가 질투라도 하듯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불행 앞에서 슬퍼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세상에 자식 잃은 부모의 눈물보다 더 처절한 슬픔을 만날 수 있을까. 진원이 하루 밖에 못사는 아이를 끝까지 낳겠다고 고집하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손 한번 못 잡아 보고 저 세상으로 떠나고, 석윤은 그런 아이에게 아내가 쓴 편지(육아일기)를 읽고 오열한다.
아이를 출산하기 직전 진원은 석윤에게 말한다. "어떤 일이 닥쳐도 절대 슬퍼하지 말자" 고.
그의 말대로 영화는 마지막 아이의 죽음 앞에서 오히려 감정을 절제한다. 진원은 절제된 한줄기 눈물로 아이를 보내고, 그 동안의 감정을 뒤집는 장기기증과 입양이란 이성적 판단과 사회적 가치로 돌아선다. 구질구질하지 않고, 의미있는 매듭을 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는 '편지'나 '약속' , 아니면 한지승 감독의 데뷔작인 '고스트 맘마' 처럼 질펀하게 감정을 쏟아내도 좋을 영화이다. 싸구려 3류 멜로라 해도 할 수 없다.
그토록 바라던 자식의 죽음보다 더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슬픔이 있을까. 때론 '3류 멜로적 감정' 이 가장 진솔한 우리 삶의 표현일 때도 있다.
'하루'는 그보다는 '8월의 크리스마스' 처럼 세련된 멜로가 되고 싶었다. 그 때문에 동화 같은 아름다움은 있지만, 인간의 속내가 짙게 묻어나는 자연스런 슬픔은 잃었다.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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