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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후원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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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후원 판친다

입력
200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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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봐주겠다"홍보 시간지나면 '발뺌'온정도 속임수인가.

매스컴을 통해 딱한 사연이 소개된 불우이웃이나 단체에 대해 후원을 약속, 잔뜩 홍보효과만 거두고는 정작 '나몰라라'하는 경우가 숱하다. 이들의 행위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한 이중의 배신감을 안겨줌으로써 그나마 실낱같던 삶의 의지를 원초적으로 꺾어버린다.

▲ '돌시인' 더 어려워져

최근 언론에 소개됐던 '돌이 되는 시인 지망생' 박진식(33ㆍ전북 순창군 순창읍)씨는 가짜 후원인들 때문에 오히려 생활고가 심화한 경우.

'부갑상선 기능항진증에 의한 각피석회화증'으로 몸이 석회석처럼 굳어져 가는 박씨는 보도 후 곳곳에서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치료비를 보내주겠다"는 후원전화가 쇄도, 감격에 젖었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온 돈은 소액 후원자 20여명이 보낸 50여만원이 전부. 거액의 치료비를 약속한 사람들은 이후 전화 한번 없었다.

더구나 후원사실이 알려지자 박씨 가족에 대해 생활보호자 지정을 검토했던 군청측이 "얼마나 후원받았느냐""한 몫 챙겼겠다"며 생보자 지정을 백지화했고, 부모님의 공공근로 일마저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박씨는 "말로만 온정을 쏟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이전보다 생활이 오히려 어려워져 당장 겨울나기도 걱정"이라고 한탄했다.

▲ 즈문둥이도 찬밥신세

지난해 초 새천년 즈문둥이로 공식 지정됐던 이태웅(1)군도 같은 케이스. 당초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와 사진을 찍으며 법석을 떨고, 유명 인터넷서비스업체 D사 부사장 등은 대학교육비 지급을 약속하며 기념사진까지 찍었지만 몇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수차례 연락을 해보았지만 D사측은 "아직 준비가 덜 됐으니 나중에 연락하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아버지 이용규(35)씨는 "자기들이 직접 찾아와 후원을 약속하며 요란하게 홍보전을 펴더니 '약발'이 떨어지자 찬밥신세"라고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청소년골프선수권대회에서 맹활약해 화제를 모았던 충남 논산시 계룡학사 보육원 골프단원들도 말뿐인 후원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언론 보도 이후 각지에서 성금과 골프용품 후원 전화가 수십통 걸려 왔지만 약속을 지킨 사람은 고작 2~3명에 불과했다. 대부분 골프업체들은 얼마 쓰지도 못할 불량용품만 몇 점 넘겨주고는 연락을 끊었다.

삼풍사고의 생존자 유지환(25ㆍ여)씨도 "사고당시 기업체 대여섯 곳에서 '대졸사원 대우로 입사시켜 주겠다''각종 CF와 영화를 찍겠다'고 제의했지만 실제로 약속을 지킨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고 말했다.

고아원 등 사회복지시설에도 일회성 후원자나 홍보에만 눈이 어두운 기업체ㆍ지역유지들이 넘쳐나고 있다. 일부 중소기업체들은 공익ㆍ자선단체들을 순회하며 홍보에만 열을 올린 뒤 꽁무니를 빼기 일쑤다.

▲ 불량품을 후원품으로

서울 은평천사원 관계자는 "성금을 약속해 놓고 외면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많지만 구두약속인 데다 강제성도 없으므로 괜한 속앓이만 하게 된다"며 "후견인으로 등록한 일부 지역유지들은 돈 몇푼 내지 않고 신년인사 등 개인 홍보성 행사에 지체장애아들을 하루종일 끌고 다니기도 한다"고 비난했다.

한국복지재단 임신혁 국내결연팀장은 "벤처기업이나 보험사가 홈페이지나 상품판매 사이트에 '수익금을 불우이웃에게 전달한다'고 홍보한 뒤 입을 씻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관공서도 부서장이 바뀌면 후견인 약속을 저버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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