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때문인지 세계화바람 때문인지 모르지만 우리사회의 영어열풍은 못 말릴 지경이 됐다. 이제 학교에서 영어만 쓰는 '영어지대'까지 설정한다니 영어교육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그런데 최근 국어연구원장 직에서 퇴임하는 심 재기 서울대 교수가 인터뷰에서 밝힌 국어의 파괴현황과 대학생들의 문장교육 부재 실태를 들으니, 심각한 일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교양국어 강의시간에 자기 이름이나 부모 이름을 한자로 못쓰는 학생이 20%나 되고, 법대 교양국어 시험을 한자로 치른다는 예고에 50명중 33명이 수강을 포기했다는 게 심 교수 말이다.
이것이 수능시험 390점 이상 받고 입학한 서울대 학생들의 실력이자 태도라니 그냥 흘려 들을 일이 아닌 것 같다. 심 교수는 대학마다 문장상담소를 만들어 졸업논문이나 보고서라도 제대로 된 우리말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을 쓰는 것은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설계가 좋아야 단단하면서도 기능이 뛰어난 건축물이 나오듯이 글도 설계과정이 필요하다. 글의 설계과정은 바로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구상(構想)이다.
물론 지식이나 경험 같은 소재도 중요하지만, 같은 소재라면 생각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글이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이다. 아무리 오디오와 영상시대라고 하지만 사고체계를 정리하는 데 글 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학생들, 특히 대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국어교육과 문장교육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긴요한 일이라고 본다.
문장공부를 통해 얻어진 사고체계가 어쩌면 뒤죽박죽이 된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를 바로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될 지 모른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우리가 영어로 사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으로부터 영어만 배울게 아니라, 문장공부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를 함께 배워야 한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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