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58)씨가 첫 동화집을 냈다. 그 '모랫말 아이들'(문학동네 발행)에는 10편의 짧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지금 어른이 되어 나는 알고 있다. 삶은 덧없는 것 같지만 매순간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며 따뜻함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모랫말 아이들'에 실린 동화들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전해준다. 황씨가 30대인 1970년대에 발표했던 이 작품들은 그 자신도 잊고 있었는데 출판사 측에서 모은 것이다.
그는 "젊었을 적에 내 아이들에게 내 유년시절을 이야기해 주려고 썼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시대적 배경은 전부 6ㆍ25전쟁 직후이거나 전쟁중이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서울 영등포 지역을 주무대로 어두운 현대사의 한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작품 속에서 "겨울날의 모랫말 동네를 떠올리면 비행기가 엔진을 데우느라고 시동을 거는 소리, 두터운 성에의 그림, 만두 파는 소년, 배추 꼬리, 양지 쪽에서 서캐를 잡는 모녀, 코크스 줍는 아이들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른풀에 질러놓던 쥐불놀이와 겨울 풍경이 완연해진다"고 회상한다.
'꼼배 다리'에서는 그 시절 흔히 볼 수 있었던, 팔목이 호미처럼 구부러진 곰배팔의 각설이 거지 춘근이가 주인공이다.
'나'는 가끔 검둥이들이 웃통을 벗어던지고 칼부림을 하면서 술주정을 하던 역전 네거리의 댄스홀집 딸 영화를 애인으로 여긴다.
동네 누나 태금이는 전쟁 통에 미친 여자가 된다. 마을 사람들은 '난세에 흔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는 동화라는 장르를 통해서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는다. 디즈니 식의 동화 세상이 아니라, 전쟁과 불구의 땅에서 뛰놀아야 했던 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세계를 정직하게 기록한다.
그는 "이제 그 어린이들은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암울하던 사정은 세대를 물려서 지금도 진행중이다.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하여 오늘도 여러 마을과 거리 모퉁이에서 살아낸 시간들을 기억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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