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홀. 이미 2위 페니 함멜(38ㆍ미국)을 3타나 앞선 박세리(24ㆍ아스트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티샷을 했다. 결국 마지막 2홀을 차분하게 파로 끝낸 박세리는 14개월 만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박세리가 15일 새벽(한국시간)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그랜드사이프러스리조트(파72)에서 54홀 스트로크플레이로 펼쳐진 올 시즌 미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개막전 유어라이프 비타민스 LPGA클래식(총상금100만달러)서 합계 13언더파 203타로 역전 우승했다.
이로써 박세리는 1999년 11월 페이지넷투어챔피언십 이후 1년 2개월만에 통산 9번째 우승컵을 안았다.
우승상금은 15만달러. 3라운드서 버디9개, 보기1개로 8언더파를 몰아친 것은 99년 켈리 로빈스(32ㆍ미국)가 헬스 사우스 이너규럴 최종라운드서 작성한 코스레코드와 타이.
데뷔 후 첫 무관(無冠)에 머문 지난 한해의 설움은 목감기의 고통도 잊게 만들었다. 데이비드 레드베터 스쿨에 있었던 톰 크리비를 전담코치로 맞아들였고, 우승제조기로 불리는 캐디 콜린 칸과 호흡을 맞춘 박세리는 짧은 퍼팅이 돋보였다.
3번홀서 90㎝ 퍼팅으로 첫 버디를 잡은 박세리는 4번홀을 보기로 마쳐 주춤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박세리는 신들린 듯한 샷을 뽐냈다. 운명의 9번홀(파4ㆍ379야드). 홀에서 18m 떨어진 거리서 박세리의 칩샷이 그대로 컵으로 빨려들어가며 선두와의 간격을 1타차로 줄였다.
상승세를 탄 박세리는 10번, 11번홀서 연속버디를 잡아 일단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또 14번, 16번, 17번홀서 줄버디행진으로 승부를 갈랐다.
한편 전날까지 박세리와 함께 공동3위였던 김미현(24ㆍⓝ016)은 2오버파로 부진, 합계 3언더파 213타로 공동10위에 그쳤다. 박지은(22)은 합계 2언더파 214타를 쳐 공동17위로 올라섰다. 장 정(21ㆍ지누스)은 합계 2오버파 218타로 공동41에 머물렀다.
전날 단독선두로 뛰어오르며 LPGA 투어 첫 우승을 노리던 카린 코크(29ㆍ스웨덴)는 4타차로 페니 함멜(38ㆍ미국)과 공동2위에 머물렀다. 코크는 통산6번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정원수기자nobleliar@hk.co.kr
■"지난해 실패가 큰 도움"
"엄마, 기분좋지." 시상식이 끝나기 무섭게 박세리는 곧장 국제전화로 대전에 있는 부모와 통화를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딸의 첫 마디에 새벽잠을 설치며 TV중계를 지켜보던 어머니 김정숙씨는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세리와의 일문일답.
_지난해 우승없이 한해를 보냈는데, 우승소감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지난해 실패가 크게 성장한 계기가 됐다.
동계훈련을 하면서 쇼트게임과 스윙훈련을 집중적으로 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_스윙, 그립, 퍼터 등을 바꿨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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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은 테이크백을 짧고 간결하게 했다. 또 이번 대회부터 네버컴프로마이스 대신 오딧세이 퍼터를 갖고 경기에 나섰다. 감이 좋았다. 퍼팅할 때 그립은 역그립에서 정확도를 높이려고 정상그립으로 바꿨다."
_ 캐디 콜린 칸과 새 코치 톰 크리비가 오늘 경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칸은 훌륭한 캐디다. 10일전부터 호흡을 맞췄지만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고 그의 도움으로 코스파악도 쉽게 했다. p>크리비는 97년 레드베터에게 배울 때 처음 알았다. 내 스윙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몇 명의 남자골퍼를 동시에 가르치고 있지만 나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또 나를 항상 영리한 골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_감기로 몸이 안좋다고 들었다. 이번 주말대회는 참가하는가.
"(우승감격 때문인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주말대회는 몸상태를 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울 것 같다."
■"코치-캐디…다 바꾸니 되더라"
"지난해까지는 아니카 소렌스탐의 시대였다. 올해에는 캐리 웹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하지만 내년에 내 세상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지난해 연말 귀국인터뷰를 가진 박세리는 "우승가뭄이 너무 오래가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시즌 개막전서 우승한 박세리가 우승 퍼레이드를 펼칠 수 있을까.
현재까진 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선 훈련기간 만난 전담코치 톰 크리비는 박세리를 잘 알고 있다. 타이거 우즈의 스승 부치 하먼처럼 전담코치를 갖길 원했던 박세리는 지난해 연말 옛 스승 데이비드 레드베터 밑에서 수석코치를 지낸 크리비와 계약했다.
이후 스윙교정에 들어갔고 동계훈련 때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역그립을 정상그립으로 바꾼 것도 그의 충고를 따른 결과다.
이번 대회에도 코스공략에 대해 아낌없이 지도를 했다.
또 새 캐디 콜린 칸도 큰 보탬이 될 게 확실하다. 박세리의 에이전트 제이 버튼의 소개로 만난 칸은 영국출신으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18승, 지난해 박지은과 1승 등 6년 동안 모두 20승을 합작한 우승제조기.
송아리를 잠시 지도했던 골프칼럼니스트 톰 핸슨은 "칸과 박세리는 첫 날부터 너무 호흡이 잘 맞았다"며 최고의 파트너로 칭찬했다.
꾸준한 동계훈련 덕분에 페이스가 무척 빠른 것도 고무적이다. 박세리는 이번 대회 우승전까지 8승을 모두 6월 이후에 일궈냈다.
또 지난해는 5월전까지 한 차례도 톱10에 든 적이 없다. LPGA 무대에서도 알아주는 '슬로스타터' 박세리는 "사실 지난해 8월부터 올 시즌을 대비해왔다"고 밝힐 정도로 많은 준비를 했다.
/정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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