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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일본판 '눈먼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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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일본판 '눈먼 예산'

입력
2001.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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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 사업과 관련이 없어 독직(瀆職)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일본 외무성이 거액의 공금유용 사건에 휘말려 있다.총리나 외무장관의 외국 방문을 지원하는 '요인 외국방문 지원실'의 전 실장(55)이 거액의 외교기밀비를 빼돌려 고급아파트와 경주마, 골프장 회원권 구입 등에 유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대적인 자체 조사와 경찰 수사로 벌집을 쑤신 듯하다.

1993년 10월~1999년말까지 지원실장을 지내면서 그는 8,000만엔의 맨션아파트와 경주마 14두, 1억엔짜리를 포함한 여러장의 골프 회원권, 요트 수척을 잇달아 사들였다.

골프 회원권과 요트값만 해도 수억엔에 이른다니 내집 마련마저 어려운 일본 서민들의 눈에는 딴세상 사람이다.

그는 지원실장에 취임한 직후 복수의 시중은행에 개인 계좌를 만들어 많을 때는 한달에 10여 차례나 수백만엔의 돈을 입금했다. 한 은행의 계좌는 한때 2억엔에 이르렀고 지금도 1억4,000만엔이 남아 있다.

그는 유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횡령 의도는 부인하고 있으나 인사이동 이후에도 개인 계좌의 공금을 외무성에 돌려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일본 국민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외교기밀비의 집행 절차이다. 외교기밀비는 총리나 외무장관 등 정부 요인의 외국 방문에 따른 호텔비와 상대국 정부 요인에 주는 선물 비용은 물론 사전 현지 조사를 위한 외무성 관료의 출장비 등에 두루 쓰인다.

'상대국 배려'라는 그럴듯한 이유에 따라 용도를 확인할 영수증 등 관련 서류의 제출이 필요없다. 그래서 외국 방문 행사만 끝나면 그의 계좌에는 수백만 엔의 돈이 차곡차곡 쌓일 수 있었다.

국민의 혈세인 나랏 돈은 사용계획(예산)은 물론 결과(결산)도 엄밀하게 심사하는 일반 원칙이지만 그 예외인 예ㆍ결산 성역에서는 언제든 나랏돈이 엉뚱하게 쓰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금 국내에서 거센 파열음을 내고 있는 '안기부 예산 사건'도 이런 속성에서 비롯된 것일 테지만, 일본의 이번 사건은 감시가 없으면 관료는 쉽게 부패한다는 이치를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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