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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배아는 생명인가

입력
2001.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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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명은 언제부터인가? 정자와 난자가 만난 직후의 수정란은 인간인가 아닌가? 아니 이 논쟁을 결론짓는 것 자체가 과연 가능한 일일까?과학기술의 진보가 강요한 가치관 논쟁이 뜨겁다. 과학기술부가 생명윤리관련법안의 준비작업으로 구성한 생명윤리자문회의는 지난해 12월부터 3차에 걸쳐 인간배아의 지위에 대해 토론중이다.

5월까지 결론을 내려야 할 8가지 의제 중 첫번째 것이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이 첫 의제조차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자문회의가 숙고중인 배아지위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각각의 파장에 대해 알아본다.

■배아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후 조직ㆍ기관의 분화가 마무리되는 8주까지 단계를 가리킨다. 지난해 12월 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생명과학안전윤리법 시안도 이대로 배아 개념을 정의했다.

그러나 이 경우 배아 연구가 아예 금지되거나 또는 8주까지 허용하는 결론이 날 수 있어 보다 정밀한 개념정의가 요구된다.

각국 법안은 조직ㆍ기관 분화가 시작되는 14일 이전과 이후로 초기ㆍ후기 배아의 개념을 나누는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배아의 지위

A. 배아는 세포다

배아를 인격체 아닌 세포덩어리로 본다. 배아는 부모의 소유물로서 부모만 동의하면 마음대로 연구, 조작, 폐기할 수 있다. 사실상 수용되지 않는 주장이다.

B. 배아는 잠재적 인간이다.

배아는 물론 세포이지만 인간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일본 의회가 통과시킨 '사람에 관한 복제기술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배아를 '하나의 세포 또는 세포군이면서 인간개체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나 태반형성 개시 이전의 것'으로 명시했다. 인간이 아니므로 연구 허용의 길을 터놓은 반면 배아를 보호할 근거도 된다.

C. 배아는 인간이다

9일 생명윤리자문회의에서 주제발표를 한 박상은(성남중앙병원 내과과장) 한국누가회 생명윤리위원장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 46개의 인간 염색체를 갖추게 되고 영양과 산소만 공급되면 자라게 된다는 점에서 수정란부터 이미 생명"이라고 주장했다. 수정 순간부터 성인 인간과 동등하게 보는 것은 가톨릭이 공인한 입장이다.

간세포 추출 난치병 연구

■배아연구는 허용되나

B-1. 21세기 미다스의 손

배아연구의 의학적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수정 후 7~12일께 어떤 조직도 만들 수 있는 간(幹ㆍ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있는데 장기이식이나 알츠하이머병, 백혈병 등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 전기가 될 수 있다.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한 수정란에서 간세포를 추출하면 환자에게 전혀 면역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치료용 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어 가장 이상적 치료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말 영국과 일본이 이러한 배아간세포 연구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어쨋든 살인... 연구반대

C-1. 배아연구는 살인

정자와 난자가 만난 수정란, 체세포를 복제한 수정란, 불임치료를 하고 남은 냉동배아, 냉동배아에서 배양된 세포주(더 이상 배아를 파괴하지 않아도 됨)조차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배아를 '살인'해서 간세포를 추출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박상은 과장은 "열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생체실험의 전례가 있는 국가들이 이처럼 배아연구를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가톨릭계가 지지하는 대안은 출산 후 버려지는 탯줄과 태반연구다. 태아의 부속물에서 얻을 수 있는 간세포, 성인의 간세포 등은 물론 연구대상이나 배아 간세포의 잠재력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불임치료

B-2ㆍC-2. 어쨌든 수정란은 보호돼야 한다

종교계에서도 임신목적의 체외수정은 찬성하며 학계에서도 수정란은 보호돼야 한다고 일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불임시술을 수십회 해 온 자문회의의 권혁찬(을지의대 교수) 위원은 "외국에서 금지된 시술법이 우리나라에선 버젓이 논문으로 발표되며 검증 안 된 시술법이 병원홍보에 악용되는 실정"이라며 수정란의 엄격한 감독을 강하게 촉구했다.

세계 각국의 인공수정법은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죽었을 경우, 사실혼 관계가 아닌 경우 인공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하는 것을 금한다.

태어날 아기가 정상 부모 밑에서 자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불임시술과 복제연구의 첨단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인공수정 관련법이 전무하다. 대한의사협회의 '인공수태윤리에 관한 선언'이 있을 뿐이다. 물론 처벌이나 제제가 불가능하다.

이인영(연세대 의대) 위원은 "예방법으로서 시술기관의 요건, 시술의사의 자격, 시술 동의절차 등을 다룬 인공수정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수정후 14일' 떠올라

■생명의 기점-14일론

B-3. 그렇다면 언제부터 인간인가

언제부터 인간인지를 다시 규정해야 한다. 영국의 법안은 '수정 14일 후'로 규정했고 일본은 앞서 언급했듯 '태반형성 개시 이후'로 명시했다.

수정 후 14일은 척추로 성장할 원시선과 태반이 형성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의 규정이다. 이 때부터 조직과 기관으로 분화가 시작돼 8주에서 마무리된다.

이전엔 8주를 기점으로 배아와 태아를 구분했을 뿐이지만 이제는 초기배아와 후기배아의 구분이 절대 중요해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시대의 요구다.

사실상 선긋기 어려워

C-3. 14일은 13일과 15일 사이일 뿐이다.

사실상 생명체 발달은 연속적이다. 개체에 따라 14일 전에 원시선이 형성될 수도 있고 14일 후에 형성될 수도 있다. 배양조건에 따라서 인위적 조절도 가능하다.

즉 '14일론'은 연구를 위한 편의에 따른 임의적 설정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태반이나 원시선 형성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이제호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태반, 원시선의 형성은 맨눈으로는 볼 수 없고 현미경으로 추정할 뿐"이라고 말했다.

14일론이 임의적인 점이 없지않다는 뜻이다. 동시에 일정한 날짜로 선을 긋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을 규제하나' 핵심

■법적 장치들

B-4. 어떻게 보호하나

김환석(국민대 교수ㆍ사회학) 위원은 ▦배아연구에서 파생된 의약품 등 사용금지 ▦배아연구에서 파생된 특허 금지

▦배아연구 자금지원 제한 ▦시대에 뒤지게 될 법적 금지보다 규제기구를 통한 신축적 규제 등을 규제방안의 예로 열거했다. 의약품이나 특허를 금지하면 연구가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 미국은 자금지원을 제한하고 있다.

관련 법은 통과되지 않았으나 국립보건원(NIH)의 지침으로 간세포 추출ㆍ연구에 연방예산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반면 민간기업 연구비로는 얼마든지 연구가 가능하다.

보다 중요한 핵심은 '무엇을 규제할 것인가'이다. 복제배아를 자궁에 착상해 개체가 태어나도록 하는 연구는 철저히 금지하되 나머지는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 연구자들 주장이다.

권리 의무 따지면 문제 커

C-4. 배아의 법적 권리?

배아를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하면 법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불임치료용으로 만들어지는 배아 각각이 인간으로서 권리, 의무를 갖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생각해보자.

냉동배아를 폐기하는 것은 살인행위이며 배아가 손상되면 피해보상을 받아야 한다. 부모가 죽은 후 냉동고 안의 배아가 상속권을 주장한다면? 배아연구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국가라도 배아에 이 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나라는 없다.

지금까진 법적으로 태아의 권리만 인정했다. 우리나라 민법은 태아를 태어날 자녀로 규정해서 사고때 피해보상의 대상이 되며 아버지가 죽은 후 태어나도 물론 상속권을 갖는다.

결국 태아와 배아를 법적으로 구분하는 정교한 개념이 다시 요구된다.

"드러내놓고 소신 밝히긴 좀..."

■생명윤리자문위 비공개 회의

지난해 11월 결성된 과학기술부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합의한 것은 30일 열릴 5차 회의를 비공개로 하자는 것이었다. 5차 회의는 그동안 다양한 의견을 듣는 데 그쳤던 인간배아연구의 허용범위를 결정하는 회의.

위원회 전체 일정 중 핵심이다.

자문위는 처음부터 공개원칙에 따라 방청제한을 두지 않았다. 시각차가 첨예한 문제를 투명하게 다루고 의견수렴의 문을 활짝 연다는 의미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9일 4차 회의에서 운영소위가 "다음 회의는 비공개로 하자"는 안건을 올렸고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황상익(서울대 교수) 소위 위원장은 "위원들 사이에 보다 부담없이 토론을 하자는 뜻이다.

회의공개가 원칙이나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위원들 대다수가 각자의 소신이 언론 등에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대신 회의 결과를 곧 언론에 발표하고 1월중 서버가 구축되는대로 인터넷홈페이지를 개설해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말했다.

공개되지 않는 소신이 제대로 된 소신일까? 20명 자문위원들은 각계를 대표하는 입장이다.

개인적 성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인문사회학계, 시민단체, 종교계, 생명공학계, 의학계의 의견이 이들의 입에 달려있다.

법안화했을 때 국민의 인권과 생명공학의 발전을 좌우할 수 있는 자문위원회의 보고서에 위원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거나 "복잡한 문제라 결론내리기 어렵다"는 말보다 자신이 속한 분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피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정일. 실제크기는 0.1~0.15㎜.

수정 후 4일째. 커지지는 않고 세포분열. 0.1~0.2㎜.

수정 후 13일. 원시선이 보이기 시작. 0.2㎜.

수정 후 16일. 조직 기관으로 분화 시작. 0.4㎜.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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