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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퇴임 클린턴 '영욕의 8년' / 비난과 존경 한몸 '55세의 前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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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퇴임 클린턴 '영욕의 8년' / 비난과 존경 한몸 '55세의 前職'

입력
2001.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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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20일 퇴임한다. 1992년 무명의 아칸소주 주지사에서 제 4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클린턴은 연임에 성공, 8년 동안 세계 유일 초강국인 미국을 이끌어 왔다. 클린턴의 재임시 공과와 인간적 면모, 퇴임 후 계획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미국 정치의 밝은 태양이자 처량한 달'(뉴욕 타임스). '생존자'(워싱턴 포스트).

빌 클린턴 대통령의 퇴임 특집을 다룬 주요 신문들의 헤드라인이다. 건국 이래 최장기 경제호황을 이뤄낸 치적과 각종 섹스 스캔들로 얼룩진 그의 야누스적 면모를 적절하게 지적한 이 문구대로 클린턴의 재임기간은 영욕으로 점철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은 20세기 들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퇴임 때 지지율(65%)이 취임 때(58%) 보다 높은 유일한 대통령이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만약 3선 금지조항만 없다면 아마 연임에 성공했을 확률이 높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CNN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은 미국민이 존경하는 남자 순위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의 이런 면모는 특히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벌인 대선쟁투에서 어느 쪽의 리더십도 인상적으로 부각되지 못한 데서 더욱 두드러 진다고 할 수 있다.

'슬릭 윌리'(Sleek Willy: 약삭빠른 녀석)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왜 미국인들은 그에게 환호하는가. 이에 대해 그의 측근 참모였던 조지 스테파노풀러스 전 백악관 대변인은 '정치가 클린턴'의 이면에 내재된 그의 '인간적 매력'과 '불굴의 투지'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과거 수 차례나 시련에 봉착했지만 특유의 돌파력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위기를 넘어가는 그의 정치력은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주정뱅이 의붓 아버지 밑에서 불우하게 자라났지만 예일대와 옥스포드대를 거쳐 1978년 32세라는 미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재임중 각종 스캔들에 시달렸지만 '정치적 동반자'인 부인 힐러리의 도움과 뛰어난 정치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클린턴이 백악관에 입성한 후 겪어야 했던 첫 시련은 힐러리를 내세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의료보장제도 개혁안의 좌절과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패해 여소야대 국면에 처한 것이었다.

특히 의회는 예산안을 거부해 연방 정부가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최악의 역경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장기인 TV 연설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끄는 데 성공했고 이를 발판으로 1996년 선거에는 거뜬히 재선했다.

20세기 들어 민주당 출신으로서는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한 클린턴이 결정적인 역경에 부닥친 것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이었다. 1998년 1월 터져나온 르윈스키 스캔들은 이전의 숱한 섹스 스캔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핵 폭탄'이었다.

국민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불륜이 이루어진 데 대해 경악했다. 야당인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는 그를 탄핵하려 했으나 그는 교묘한 화술과 힐러리의 눈물겨운 지원 등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수렁에 빠진 클린턴을 구원해준 것은 그가 자랑해 마지않는 경제번영이었다. 미국민들은 대통령의 부도덕성에 치를 떨었지만 경제호황을 안겨준 지도자로서 클린턴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정치적으로 살아 남은 결과는 민주당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앨 고어 부통령은 '클린턴 혐오증'탓에 대선에서 낙마했고 의회의 다수당 지위를 내준 데 이어 28명이나 됐던 민주당 소속 주지사는 19명으로 줄었다.

클린턴의 최대의 정적이었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수완이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클린턴을 평가했다. 앞으로 힐러리 상원 의원의 남편으로 살아갈 클린턴이 또 어떤 드라마를 엮어갈지 궁금하다.

■ 클린턴 연보

1946년 아칸소주 리틀록 출생

1968년 조지타운대졸, 옥스포드대 유학

1978~1980년 아칸소주 주지사

1982~1992년 대통령 취임

1993년 1월 사회복지개혁 착수

8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인준

1994년 1월 화이트워터 스캔들

6월 폴라 존스 스캔들

1995년 12월 데이튼 평화협정 조인

1996년 8월 의료,복지개혁 단행

1997년 1월 대통령 연임

4월 화학무기협정 인준

12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유럽 확대 결정

1998년 1월 르윈스키 스캔들 시작

12월 지구온난화에 관한 교토의정서 조인

12월 이라크 무기시설 공습

1999년 2월 상원, 탄핵재판 종료

6월 코소보전 승리

2000년 10월 중국에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지위 부여

워싱턴=윤승용특파원syyoon@hk.co.kr

■"책쓰며 조용히 살것"

지난 8년간 미국 대통령으로 세계의 온갖 분야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빌 클린턴도 퇴임 후에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국 언론은 여러 사정으로 미뤄 클린턴 대통령이 얼마동안은 고향인 아칸소주 리틀록과 부인 힐러리 상원의원의 선거구인 뉴욕, 새로 구입한 집이 있는 워싱턴을 오가며 책을 쓰거나 강연을 하며 조용히 지낼 것으로 보고 있다.

클린턴은 지난해 말 백악관 출입 기자들에게 "퇴임후 언론의 관심을 끌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살면서 책을 쓸 계획"이라면서 "책을 쓰더라도 아내가 회고록 선금으로 받은 거금(800만 달러)을 벌 것 같지는 않다"고 향후 계획의 일단을 밝혔다.

클린턴은 또 섹스 스캔들 소송과정에서 진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전직 대통령들처럼 강연도 많이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강연료는 1회 10만 달러선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또 고향 리틀록에 2003년 또는 2004년 완공 예정으로 자신의 기념도서관과 정책센터 건립을 추진중이어서 자주 고향을 들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도서관을 채울 서류와 사진, 기념품 등을 옮겨놓았다.

클린턴은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로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사무실을 6개월 동안은 워싱턴과 뉴욕에 2개, 그 후로는 뉴욕에 1개를 둘 것으로 알려졌는데 주로 뉴욕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말이다.

클린턴은 세계평화와 인권 등에 헌신해온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고, 내심으로 북아일랜드나 중동평화 협상 등 재임시 중재했던 국제분쟁에서 대통령 특사 등으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길 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연방정부로부터 여생동안 연금을 받게 되는데 올 한해는 16만 1,000달러, 82세까지 살 경우에는 총 729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클린턴 경제는 '만점' 외교는 '보통'

미국 언론들은 대부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재임 중 이룩한 업적 중 가장 뛰어난 점은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어 갔다는 것이라고 꼽는다. 워싱턴의 정치 분석가들도 클린턴의 재임 업적에 대한 성적표를 매기면서 경제에는 '만점', 외교는 '보통'으로 점수를 주고 있다.

그만큼 그의 경제 치적은 단연 돋보인다. 취임할 때만 해도 천문학적 숫자로 불어나던 연방 예산적자를 2000년 말 현재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2,370억 달러의 흑자로 돌려놓은 것은 기적적이다.

또 8년동안 35만명의 공무원을 감축하고도 2,250만명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실업률을 30년만의 최저 수준인 4%대로 낮춘 것도 놀랍다.

뿐만 아니라 물가상승률은 1961년 케네디 정권이후 최하인 연 평균 2.5%, 주택 보유율은 사상 최고인 67.7%를 기록하기도 했다.

공화당측은 미국 경기상승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규제완화정책의 영향이라며 클린턴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1년 전인 1991년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지만 수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조지 W 부시 차기 대통령이 최근 잇달아 미국 경제가 추락할 수 있다며 경고하고 있으나 오히려 부시의 1조3,000억 달러 감세공약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명분쌓기' 라는 인상만 줄 뿐이다.

외교 분야에서도 크게 실패한 것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취임 초부터 매달린 북한과의 핵 협상이나 중동평화협상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현상유지, 또는 일부 진전을 이룩했다.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미사일문제 등 현안을 차기 대통령에 넘기라는 미국내의 여론에 밀려 마지막 순간에 방북을 포기한 게 아쉽지만 '깡패국가'를 협상테이블로 불러내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 평가된다.

또 "인도주의적 참사를 방관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개입한 유고 내전에 대해서는 내정간섭이라는 논란과 함께 성 추문으로 궁지에 몰린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찰로서의 입지를 강화시키기도 했다.

탄탄한 경제를 이룩했다는 자부심으로 퇴임을 1주일 앞두고도 여전히 중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클린턴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홀가분한 심정으로 후세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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