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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변칙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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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변칙 사회'

입력
2001.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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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아프리카' 라는 영화의 한 장면은 분주한 내 일상에서 항상 동경의 대상이다. 남녀 주인공이 낮은 언덕의 초원 위에 비스듬히 누워 아프리카의 평온하고 넓은 대지를 한가롭게 내려다보는 장면, 그리고 부드러운 음악도 함께하는 그 절대 평화의 시간. 진짜 21세기라는 2001년 벽두부터 나는 그 곳으로 탈출하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다.매해 1월 한달 동안은 새 수첩을 정리하며, 한 해를 잘 보내야겠다는 작은 소망을 습관적으로 꾸려본다. 그러나 이제 고작 2주를 보냈을 뿐인데 우리는 지치고 있다.

요즈음 우리를 지치게 하는 첫 번째 요인은 누가 뭐래도 정치일 것이다. 투표로 뽑아 놓은 정치인들이 물건 꿔주고 받듯 이리 저리 옮겨 다니더니, 또 국민의 세금을 빼돌려 국회의원 선거와 개인적 치부에 유용했다는 소식으로 시끄럽다. 초등학교 아이 눈에도 잘잘못이 가려질 수 있는 이런 일들이 진행되지만 우리 정치에는 반성이 없다.

상대방에 대해 비난하는 목소리만 높을 뿐 잘못했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공연한 정치 음모 또는 보복이라고 주장하며 독기 어린 얼굴로 텔레비젼 화면을 장식하는 정치인들의 얼굴을 보며 우리는 지쳐간다.

저들은 끝까지 잘못을 이야기하지 않겠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반성하지 않는 어른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일, 채널을 돌리거나 꺼버리는 일이다.

하얀 눈이 축복처럼 많이 내렸지만 그것도 우리 사회에선 전부 재난이 되어 버렸다. 눈이 많이 내려 교통이 엉망이 되어도 휴일이기 때문에 집에 있었다는 관계 공무원들의 무심함과, 규격대로 지어지지 않은 비닐 하우스가 무너져 내려 추운 겨울 정성들여 키우던 과실과 채소, 그리고 양계장의 닭들이 망쳐지거나, 죽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공항은 마비되고, 사람들은 차 안에서 몇 시간씩 대책없이 갇히고, 눈 때문에 갑자기 멈춰버린 듯한 우리 사회의 재난 대책 시스템의 부실함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동시에 차분하게 해결책을 기다리지도 않고 무조건 흥분해서 공항 직원들에게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우리의 자화상도 역시 답답할 뿐이다.

성폭력으로 기소된 연예인은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하고, 자녀 부정 입학으로 구속에 처하게 된 부모들은 _ 그런데 부정입학에 연루된 부모들은 왜 모두 어머니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_ 처음에 입학이 가능하다는 말만 믿고 따랐을 뿐 그것이 부정행위가 될 줄은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잘못 한 사람이 없는데, 우리 사회는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병원 한 구석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웃으며 살아라, 너무 많은 욕심을 갖지 마라.... '그래 이런 일이라면 가능하다.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이렇게 되뇌인다. 그런데 다음 항목은 '원칙대로 살려고 노력하라' 이다. 갑자기 자신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원칙대로 살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이게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가.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원칙과 법을 준수하는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결연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진행되어온 일에 대한 성찰 없이 앞으로는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연초마다 금연이라고 써 붙이고 연말에는 더 많은 흡연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의 결심처럼 공허해질 수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원칙을 지키지 않고도 당당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너무 많은 변칙과 위험이 난무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단순하다. 원칙을 지키고도 손해 보지 않는 것, 아프리카 평원처럼 단조로운 평화가 아니라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에 의해 사회가 소통되고 질서가 유지되고 그래서 분주하지만 평화로운 일상, 그래서 탈출을 꿈꾸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강이수ㆍ상지대 인문사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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