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 필사본이 주류 학계로부터 위서(僞書) 판정을 받았다 해도, 혹은 실제 위서라 하더라도, 위서치고는 대단히 완성도가 높은 위서임에는 분명할 것 같다.필사본의 초록본이 1989년에, 모본(母本)이 1995년에 각각 발견된 이래 진본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연구자가 있다.
뿐만 아니라 위서판정을 내린 노태돈 서울대 교수조차도 화랑도 연구자들이 참고하기를 권할 정도다.
화랑도와 신라사 사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구성됐으며, 뛰어난 상상력과 문학적 자질로 화랑도에 대한 수준 높고 흥미로운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필사본에 실려 있는 향가 한 수 '풍랑가'도 마찬가지다. 향가해독이 초보적 수준이던 1930~40년대에 이런 격조 높은 향가가 창작될 리 없다는 이유로 진본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국문학자도 있다.
문제의 필사본은 7세기에 김대문이 쓴 것을 1933~1944년 일본 왕실도서관에서 근무했던 박창화가 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김영사 발행)는 이 필사본이 진짜라는 주장을 학계에서 외롭게 펴고 있는 이종욱 서강대 교수가 내용을 쉽게 풀어쓴 책이다.
지난해 화랑세기 필사본을 번역해 진위논쟁을 가열시킨데 이어 이번에는 좀더 대중적으로 내용을 알리겠다는 취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다함 김유신 김춘추 등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 32인의 전기를 담은 이 필사본의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신라인의 문란한 성생활 부분이다.
단적인 예가 세계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마복자(摩腹子)제도다. 마복자란 부하가 임신한 자기 아내를 상관에게 바친 후 태어난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 통해 상관은 부하 아들의 후견인이 되면서 정치적으로 상하관계가 더욱 긴밀해진다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사다함의 애인이었던 미실이라는 여인은 진흥, 진지, 진평 3대에 걸쳐 왕을 섹스로 섬겼다. 또한 아들이 아버지의 여자를 범하는 등 정상적인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기록돼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진위논쟁의 핵심 중 하나이지만, 진위 여부를 떠나 화랑도와 신라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해석이라는 점은 공통된 의견이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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