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지도력, 강한 정부론이 신년 정가의 화두가 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2일 청와대 비서실 신년회의에서 '강력한 정부론'을 제기한데 이어 11일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주장을 폈다."강력한 정부란 과거 군사정부 시절의 정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절차를 중시하는 정도(正道)와 법치(法治)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2001년, 21세기로 접어든 이 마당에 그런 교과서적인 설명이 필요한 한국정치의 현실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한평생 민주주의를 생명처럼 내세워 온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3년이 되는 오늘 '정도와 법치'를 새삼 강조해야 하는 현실 또한 씁쓸하다.
지난 연말 민주당 대표직을 맡은 김중권씨 역시 '힘있는 여당'을 선언했다. 그의 선언은 '의원 빌려주기'를 단행함으로써 곧 가시화 했다. 그는 민주당 의원 3명이 자민련으로 옮겼을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고 발뺌했으나, 10일 장재식의원을 '추가임대'해준 후에는 "양당 지도부가 협의했다"고 당당하게 나섰다.
'의원 빌려주기'에 대한 빗발치는 여론에 굴하지 않고 즉각 1명을 더 보냄으로서 '자민련 교섭단체 만들어주기'를 완결한 그의 뚝심을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가 혹시 이런 구시대적 방식을 '힘있는 여당'의 결단으로 오해하는게 아닌가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국민이 강한 리더십을 갈망하는 것은 사실이다. 새 정부 출범이후 정치는 계속 혼란을 겪고 있고, IMF체제를 잘 극복하는듯 하던 경제는 다시 악화하고, 개혁은 지지부진한 상태가 지속되자 "뭐 하나 시원하게 되는 일이 없다"는 불만과 염증이 팽배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튀어 나온것이 강력한 정부론이다. 그러나 무엇이 강력한 지도력인가, 그 지도력은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른것 같다.
김 대통령이 강조한 '정도와 법치'는 강한 정부의 토대다. 정도와 법치에서 멀어질수록 약한 대통령, 약한 정부가 된다.
법을 초월하는 권력을 휘두르면서 길이 아닌 길을 가는 지도자는 무너질 수 밖에 없고, 우리 역사는 그런 점에서 많은 교훈을 담고 있다.
김 대통령의 '강한 정부론'은 이런 원론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가 강력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각 부처가 대통령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 김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준비된 대통령'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3년이 흐른 오늘, 그런 자신감이 강력한 정부의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된다.
뛰어난 지도자 한 사람의 능력이나 안목으로 나라를 끌고 가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신경 쓰느라고 경제가 이모양이 되었다는 비판이 높은데, 대통령이 어떤 일에 신경 쓰든 각부처가 탄탄하게 자기 할일을 소신껏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정부가 강한 정부고, 그런 정부를 가진 대통령만이 강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정치'를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된 순간 그는 이미 정치를 졸업한 사람이다.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으려 하고, 인기에 신경쓰고, 선거를 의식하는 대통령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바람부는 벌판에 외롭게 서서 옳은 판단을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역사 앞에 자신을 내던지는, 마음을 비운 지도자만이 강해질 수 있다.
지지자들이 아닌 비판자들을 가까이 두고 중용하여 폭넓은 의견을 들어야 한다. 자신은 물론 권력주변 인물들의 사심(私心)이 끼어들면 정도를 가기 어렵다.
강한 지도자는 독주자(獨奏者)가 아니다. 각 파트에서 자기소리를 내면서 화음의 강한 힘을 이끌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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