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가 1996년 4ㆍ11총선 전 신한국당에 전달한 자금을 받아 쓴 당시 개별 후보자들의 명단이 공개됨으로써 이들에 대한 조사 여부가 향후 검찰 수사의 쟁점으로 급부상했다.물론 신한국당에 지원된 안기부 예산 940억원의 자금 관리와 분배를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강삼재(姜三載)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겠지만 검찰은 강 의원을 통해 이 돈을 받아 쓴 정치인에 대한 소환 조사도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9일 "당시 지원받은 자금을 갖고 있다가 최근 사용하거나 계좌에 입금한 경우도 발견됐다"면서 "정치인 일부에 대해서는 불러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혀 돈을 받은 정치인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어떤 경위로 돈을 받았는지와 안기부에서 흘러나온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검찰이 돈을 받은 정치인중 일부에 대해 형사처벌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검찰은 이들 정치인 가운데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 운영차장과 공모했거나 안기부 예산인 줄 알면서도 자금을 적극 요구한 경우에는 김 전 차장에게 적용했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5조(국고손실죄) 위반의 공범으로 사법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 운영자금에서 나온 돈으로 알았거나 안기부 자금일 수도 있다는 '미필적 인식'만 한 경우에는 국고 횡령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분석이다. 또 97년 정치자금법 개정 전의 일이고, 정치자금법 위반 공소시효(3년)가 지나 마땅한 처벌 법규도 없다.
검찰은 당에서 상식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금액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원받은 정치인들을 우선 소환 대상으로 꼽고 있다. 안기부에서 흘러나온 돈인 줄 알면서 받았을 개연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4억원 이상 지원받은 37명이 소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안팎에서는 명단이 공개된 이상 정확한 수수 액수를 확정하고 전달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형사처벌 여부와 상관없이 관련 정치인 전원을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우에 따라 새해 벽두부터 현역 의원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진풍경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조사 대상자 대부분이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이고 한나라당이 이번 수사를 '야당 파괴 공작'이라며 극력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 소환 조사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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