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란만을 확보하라."베트남 캄란만 해군기지에 대한 러시아의 임차기간 만료시점이 3년 후로 다가오면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기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캄란만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전략 요충일 뿐 아니라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가 점유하느냐에 따라 향후 이 지역 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러시아는 캄란만 기지를 유지하기 위해 대 베트남 부채 탕감, 신무기 제공 등 각종 '당근'을 준비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러시아 국가수반으로는 최초로 베트남을 방문, 기지임대 연장 협상을 마무리 하겠다는 계산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건설한 캄란만 기지는 종전 후 중국과의 국경분쟁으로 위기에 몰린 베트남이 1978년 중국 견제 차원에서 2004년 반환을 조건으로 소련에 임대했다.소련은 이 기지에 감청시설을 비롯해 장거리 폭격기 등을 배치, 동남아 및 인도양의 대미 전초기지로 활용해 왔다.
1992년 수빅만 해군기지를 필리핀에 반환한 후 사실상 동남아 거점을 상실한 미국은 캄란만 확보를 세계 경영에 필수적인 관건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데니스 블레어 태평양지역 사령관이 기지 이용 가능성을 모색한데 이어 3월에는 윌리엄 코언 국방부 장관이 베트남을 방문, 양국간 군사협력 방안을 재점검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11월 종전 후 미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것도 과거 청산이 명분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캄란만 기지 확보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됐다.
미국이 캄란만에 집착하는 것은 이 기지가 동북아와 중동을 잇는 해양수송로의 중간 정류장일 뿐만 아니라 '대양 해군'을 지향하는 중국을 봉쇄하는 거점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동남아에서 중국을 견제해온 베트남이 중국과 손을 잡을 경우 이 지역의 패권을 송두리째 빼앗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우려를 자극하듯 중국은 아주 빠른 속도로 베트남에 다가서고 있다. 1999년 말 육지 국경협상을 마무리지은 양국은 지난해 말 통킹만 영해 협정을 체결, 수 천년 동안 분쟁의 원인이 됐던 영토 문제를 사실상 완전 해결했다.
특히 지난해 말 방중한 천득렁 베트남 대통령이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체결한 상호무력 사용금지 협정은 베트남이 중국의 남중국해 및 인도양 진출을 사실상 묵인한 것으로 해석됐다.
강대국들의 대 베트남 구애 작전과 함께 인도 일본 싱가포르 등도 베트남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는 8일 베트남을 방문, 원자력 발전소 건설 지원을 위해 2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베트남은 열강들의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절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지난 세기 프랑스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데 이어 미국, 중국과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이 21세기에 새롭게 직면한 열강들의 도전을 어떤 식으로 극복해 나갈 지 주목된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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