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사이에 악극은 인기상품이 됐다. 극단 가교가 1993년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린 '번지 없는 주막'이 크게 히트한 뒤, 매해 서너 편씩의 악극이 공연되고 있다. 처음 효도상품으로 주가를 올리더니 중장년 관객도 점차 늘고 있다.올해도 설 연휴에 맞춰 세 편의 악극이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MBC가 제작한 '애수의 소야곡'(18~28일)과 극단 세령의 '여로'(2월 1~11일)가, 예술의전당에서는 극단 가교의 '무너진 사랑탑아'(24일~2월 11일)가 공연된다.
여로는 서울 공연을 전후해 부산, 수원, 대전, 청주, 대구에도 간다.
악극이 대개 그러하듯 세 작품도 일제시대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흘러간 옛노래에 드라마를 입힌 것이다.
월남한 남편을 찾아 내려온 여인의 한스런 인생유전(애수의 소야곡, 연출 문석봉), 못된 시어머니 때문에 고생하는 착한 며느리(여로, 연출 김창래), 돈 때문에 사랑을 버린 청춘남녀의 비극(무너진 사랑탑아, 연출 강대진) 등 한결같이 고생스럽던 시절의 억울하고 서러운 사연을 담은 것이다.
악극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비판도 높다. 흘러간 옛노래로 울궈먹는 뻔한 신세 타령. 힘들었던 세월의 눈물 짜는 이야기. 대충 그런 비난이다.
복고풍 일변도에다 예술성도 없다는 것이다. 일제 잔재라며 추방하라는 주장도 없지 않다.
과연 그럴까. 극단 '모시는 사람들' 대표로 극작ㆍ연출가인 김정숙씨는 생각이 다르다. 지난해 악극 '비 내리는 고모령'의 작ㆍ연출을 맡기도 했던 그는 "악극은 서민 대중 예술로는 훌륭한 장르"라며 "단, 과거에만 매달린 소재의 빈곤을 벗어나 좀 더 미래지향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일제시대 악극 '아리랑'에 새 노래가 28곡이나 들어갔던 예를 들면서 "있는 음악만으로 쉽게 가려 하지 말고 악극에 맞는 새로운 곡을 써야 할 것 "이라고 말한다.
또 악극을 '노인들이나 보는 촌스런 저급 예술'쯤으로 보는 것은 노년 세대가 즐길 문화가 없다시피 한 우리 현실을 생각할 때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한다.
대안도 없이 욕할 게 아니라 좀 더 다듬어서 악극의 예술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의 희곡 당선자인 김정훈씨도 '악극은 가능성이 많은 장르'라고 본다.
'악극을 쓰는 게 꿈'이라는 그는 "음악과 소재에서 지금처럼 회고조에 머물 게 아니라 신세대도 즐길 수 있는 악극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악극은 관객에게 가서 꽂히는 힘이 대단하다. 악극에서 힘든 삶의 위안을 받는다면, 그것 만으로도 가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악극이 예술적 가치로도 인정받는 날이 오려면, 연극인 뿐 아니라 음악인들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재로선 연극배우는 악극 출연을 정통에서 벗어난 아르바이트 쯤으로 여기고 작곡가들은 관심을 거의 두고 있지 않다.
▲여로 19~21일 광주문화예술회관, 24~28일 부산문화회관, 2월 1~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오후 3시ㆍ7시 30분, 2월 17~18일 수원 경기도문화예술회관, 2월 21~22일 대전 충남대 대극장, 2월 24~25일 청주 예술의전당, 3월 3~4일 대구시민회관. (02)3675-0959
▲무너진 사랑탑아 1월 24일~2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평일 오후 4시ㆍ7시 30분, 주말ㆍ설 연휴 오후 3시ㆍ6시 30분. 1588- 789
▲애수의 소야곡 18~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평일 오후 3시ㆍ7시, 일ㆍ설 연휴 오후 2시ㆍ6시 (02)368-1515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