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야 하는 세금이 가구당 1,000만원을 넘어섰지만 이는 고(高)세금 시대의 시작에 불과하다. 정작 막대한 세금 부담은 내년부터다. 104조원의 1,2차 공적자금의 원리금 상환액이 예산에 본격 반영되고 의료보험과 각종 연금의 재정고갈이 속속 현실화하기 때문이다.▲올해 추경부터 세금 압박 시작
1차 5조원 등 6조5,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올해 1,2차 공적자금 이자는 내년에는 9조원 이상으로 대폭 늘어 국민 1인당 20만원의 세금이 더 늘어나게 된다.
올해 1조5,000억원이었던 2차 공적자금(40조원)이자가 내년에는 4조원으로 급증하기 때문. 2003년과 2004년에는 모두 38조원에 이르는 1차 공적자금의 원금을 상환해야 하지만 절반 가량은 회수가 어려워 보증을 선 정부가 대신 물어줘야 할 형편이다.
지급 불능으로 만기를 연장해도 추가 이자부담은 고스란히 세금 부담이 된다.
의료보험 재정의 경우 근본적인 수술이 없으면 세금 부담이 해마다 가중된다. 올해 의료보험 수가를 대폭 높였는데도 지역의보에 대한 국고지원은 오히려 3,000억원 이상 늘었듯 누적된 적자에 대한 국민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미 고갈된 군인연금과 1~2년내 고갈이 예상되는 공무원연금 등 4대 연금의 부실도 결국 내년부터 세금으로 메울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올해의 기록적 과세도 2002년부터 시작될 막대한 세금 부담의 전초전일 뿐"이라며 "경제 성장 둔화와 금리 인상 등의 요인이 발생할 경우 당장 올해 추경예산부터 세금 압박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민 직접 부담도 늘어
정부가 올해 봉급생활자의 근로소득세를 낮추는 '이벤트'를 벌인 데는 지난해 실적 호전으로 3조원 가량 늘어난 법인세가 큰 몫을 했다. 하지만 법인세는 전년도 기준으로 과세되기 때문에 올해 기업 실적이 부진할 경우 내년도 세수는 줄어들게 된다. 이때 모자라는 세수는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특별소비세 등 국민 직접 부담으로 충당해야 한다.
20조원에 육박하는 지자체 채무의 원리금 상환도 내년부터 본격화해 일부 지자체의 재정파탄과 그로 인한 세금 증가도 우려된다.
한양대 경제학과 나성린(羅城麟) 교수는 "지금 상태대로라면 공적자금과 연금부실 등에 대한 부담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게 된다"며 "조세부담을 높이는데도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지출을 줄이는 한편 음성탈루소득에 대한 과세와 함께 강도높은 경제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이상연기자 kubrick@hk.co.kr
■세금을 헛된 곳에 쓰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뼈를 깎는 공공부문 구조조정 노력과 함께 정부와 정치권이 증세(增稅)는 무조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식의 책임불감증과 행정편의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세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더 철저한 감시와 평가, 책임규명을 위해 국회와 감사원은 물론 시민단체 언론 연구기관 등의 분발과 함께 폭 넓고 효율적인 예산감시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잘못된 정책에 대한 국민세금 투입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의 선심성 입법을 차단, 국민의 새로운 세금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회는 내국세의 13.27%와 11.8%로 정해져 있던 지방재정교부금과 교육교부금을 올해 각각 15%와 13%로 일괄 인상했다.
지방재정 악화에 대한 근본적 대책 없이 "부실은 세금으로 채워준다"는 원칙을 세운 셈이다. 정부가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긴축예산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금이 너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농어촌부채 경감과 공무원연금 지원금 등 계속 늘기만 하는 신규 세금부담도 문제다. 정치권은 지난해 말 농업개혁에 대한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10년간 4조5,000억원, 올해만 6,500억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농어촌부채경감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또 파탄 직전의 공무원연금을 지원하느라 올해부터 1,000억원 가량의 추가 세금 부담이 발생한다. 선심은 정부가 베풀고 책임은 국민에게 안긴 것이다.
각종 연금과 공적보험의 재정위기가 계속 세금부담으로 이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근본적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는 지난해 8월 한국의 국민연금 재정파탄을 우려하며 "현재 임금의 9% 수준인 연금 불입액을 18%로 인상하라"고 권고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영선(高英先) 박사는 "예산의 중장기적 안목이 결여되고 사회보험의 재정 운용 투명성이 떨어져 정부가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며 "예산집행에 대해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평가제도 등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강대 경제학과 김광두(金廣斗)교수도 "최근 공적자금이 투입된 6개 은행의 감자 과정에서도 드러났듯 누가 잘못된 정책을 실행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정책실명제를 실시해 실패한 정책을 입안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적자금 원리금 상환 등 기존 부실은 결국 국가채무와 세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국민들은 어쨌든 더욱 늘어날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앞서 공공부문 세출을 줄이는 등 정부의 솔선수범과 함께 효율적 경제정책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경대 행정학과 이원희(李元熙) 교수는 "세금증가와 물가인상, 소득정체 등 3중고로 국민들의 조세저항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무조건 세금을 줄이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라는 것이 국민들의 진정한 요구"라고 강조했다.
결국 성공적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성장과 소득증가를 이루는 한편, 공평한 과세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각계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3차 공적자금 필요성까지 대두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과세의 불균형 인식이 확산된다면 국민의 조세저항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방송대 경제학과 김기원(金基元) 교수는 "이대로라면 또다시 공적자금을 조성할 필요가 생긴다"며 "현행 조세제도의 모든 편법을 없애고 금융종합소득과세 부활 등 특단의 대책을 세워 조세 불균형에 따른 국민의 박탈감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조세연구원 박종규(朴宗奎) 박사도 "국민들에게 갑자기 부담 증가의 불가피성을 호소해야 하는 정부의 어려움도 이해하지만 정도(正道)를 걷는 게 최선의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이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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