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은 더러 폄훼의 뉘앙스를 담아 사용되기도 하지만, 누구나 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문체를 지니게 되기까지에는, 그래서 필자의 이름이 없어도 누가 썼는지를 이내 알 수 있을 만큼 독특한 글을 쓰게 되기까지에는, 재능만이 아니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스타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문필가로서의 장점이지 단점은 아니다.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에서 기자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름은 지난 90년에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이다.
그는 유럽어 번역투의 한국어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개성적인 스타일리스트였고, 자신의 문체로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킨 문장의 교사였다.
활동 중인 문필가 가운데도 스타일리스트는 많다. 소설가 박상륭 이문구 복거일 이인성, 문학평론가 김우창 유종호 정과리, 시인 황지우, 문화평론가 이재현 진중권 같은 이들은 그 개성적인 스타일로 한국어의 산문에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한 자연언어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스타일리스트의 산문은 아름답게 뻗어나간 가지들이지, 그 몸통이 될 수는 없다.
한 자연언어에는 스타일리스트의 개성적인 글 이전에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익혀야 할 어떤 표준적 문장, 교과서적 문체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표준적ㆍ교과서적 문장을 익히지 않은 채, 섣불리 스타일리스트의 문장만을 흉내내다가는, 겉멋만 배어 있을 뿐 문법에도 어긋나고 논리도 풀어진 나쁜 문장에 버릇 들기 십상이다.
문학평론가 이남호(44)씨의 새 책 '혼자만의 시간'(마음산책 펴냄)은 한국어의 그런 표준적 문장을 모아놓은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이남호씨는 이 산문집에다 자신이 평론문에서 보여주었던 개성적 글쓰기의 욕망을 최대로 억제하고 쓴 듯한, 가히 한국어의 몸통이라고 할 만한 표준적 글 54편을 모아놓고 있다.
방금 기자는 저자가 개성적 글쓰기의 욕망을 억제한 듯하다고 말했지만, 되다 만 스타일리스트가 흔한 우리 글판에서 실상 이남호씨의 이 글들이야말로 그 교과서적 단정함으로 독특한 개성을 확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내용에서도 젊은 세대에게 읽힐 만하다. 흔히 자신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생각들을 따라가다 얻게 된 깨달음을 기록하고 있는 이 글들은 그 온건한 양식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덥힌다.
그 깨달음이 흔히 통념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자가 보기에는 그런 통념이야 말로 한 공동체를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기본적 가치들인 것 같다.
이남호씨는 예비 국어 교사들을 가르치는 사범대학 교수이기도 하다. 국어 선생님들의 선생님으로서 그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관한 글도 여러 편 써왔는데, 이 책에 모인 글들은 교과서에 실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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