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문 시카고 트리뷴은 꼭 100년 전인 1901년 1월 1일자에 19세기를 되돌아 보고 20세기를 전망하는 특집지면을 내놓았다. 환상적인 물질문명의 발전이 인류에게 큰 축복을 갖다 주었다는 것이 19세기 회고의 주조였다.환상적이란 표현으로 상찬한 물질문명의 발전이란, 방직기 같은 기계류의 발달, 자동차 기차 같은 교통수단의 발명, 전기와 통신수단의 발명 등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옷감을 쏟아내는 기계와, 짧은 시간에 많은 승객을 멀리 실어 나르는 기차가 생활의 혁명을 가져다 주었으니 그렇게 흥분할 만 한 변화였으리라.
여기에 종교ㆍ 교육ㆍ 사상의 자유를 얻어내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의학과 위생학의 발전으로 생명의 연장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있겠는가.
다만 아름다움의 형상화와 음악ㆍ 문학ㆍ 건축 등 예술분야의 발전이 18세기만 못한 것이 애석하다 하였다.
이런 변화를 근거로 20세기를 전망하면서 시카고 트리뷴은 "물질문명 발전에 대한 관심이 저하되고, 배금주의 풍조도 한 풀 꺾일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물질문명에 염증을 느끼게 되는 세상에서는 아름답다는 것이 유용한 것보다 상위개념이 될 것이고, 물질보다 정신문명을 더욱 추구하게 될 것이며, 휴머니티와 인류애의 장(場)도 실현될 것이라는 꿈 같은 전망이었다.
방직기와 기차 정도로 더 이상 물질문명에는 관심이 없고, 아름다움에 더 큰 관심을 갖고싶어 한 20세기 사람들의 순진성을 보는 것 같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미적(美的) 생활'이 화두가 되었다. 문예평론가 다카야마 초규(高山?牛)가
이란 잡지(1901년 8월 호)에 '미적생활을 논함'이란 글을 쓴 것이 계기였다.
그는 물질의 풍요와 사회적 지위보다 귀중한 것이 있다면서, "가난하고 희망을 잃은 청년들아 슬퍼하지 말라, 미적 생활이 복음이다" 하고 외쳤다.
대유행이 된 미적생활이란 말은 한 수재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아 일본열도가 떠들썩하였다. 수재들의 집합소인 제일고등학교 학생 하나가 유명한 관광지 닛코(日光)의 폭포(華嚴瀑)에서 투신자살을 한 것이다.
불가해(不可解)란 말을 남긴 18세 청년의 죽음을 세인은 미적생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그의 자살은 많은 추종자를 불러 닛코는 자살의 명소가 되었고,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때 한국은 어떠했는가. 아름다움이니 휴머니즘이니 하는 배부른 소리를 할 형편이 아니었음은 굳이 되풀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극심한 흉년으로 유리걸식 는 무리가 넘쳐 나 없어졌던 혜민원을 다시 만들어 기민을 진휼한 것이 1901년이었다.
물질문명의 측면에서 보면 전년에 경인철도가 완전 개통되었고, 이 해에 경부선이 기공되었으며, 서울시내에 가로등이 처음 켜졌다.
정치적으로는 한반도를 탐내는 이리 떼 같은 열강들의 아귀다툼이 노골화하자, 러시아 정부가 열국들의 공동보호 아래 한국을 중립화하자는 제안을 내놓을 정도였다.
이제 그렇게도 목마르게 기다려 오던 21세기가 시작되었다. 2000년대의 개막과 함께, 마치 요순시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앞당겨 맞이하고 싶었던 새로운 세기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21세기의 여명에 100년 전을 되돌아 보는 것은, 문명과 탐욕이 초래한 이 어지러운 세태가 너무 지겨워서다.
정치판의 돈 싸움- 특히 선거자금을 둘러싼 저 끝없는 진흙탕 싸움을 보고 있노라니, 타임 머신의 바늘을 100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다. 저 순진한 19세기 사람들이 그립다.
문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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