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DJP 공조'라는 것이 복원된 것 같다.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이적한 의원들을 반기면서 김종필 명예총재가 DJP 공조의 복원을 선언한데 이어 김대중 대통령도 '잘못된 정치를 방치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를 환영했다고 한다.그 과정에서 이들은 한나라당을 '잘못된 정치'의 원흉, 훼방꾼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안기부 총선자금 불법지원 수사가 진행되면서 급기야 민주당 김중권 대표가 이회창 총재에게 의혹의 화살을 돌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는 이 사건은 정치적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큼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 야당에 중심을 이루는 구여권 인사들이 불법자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이나 여당은 이로써 집권 후반기를 위한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아니 단순히 진만을 친 것이 아니라 배수의 진을 치고 총반격을 감행하고 있는 인상이다.
여기서 밀리면 끝없이 밀린다는 위기의식이 역력하다. 그토록 권력의 누수가 두려웠는가, 영수회담결렬과 야당과의 전면전을 불사하면서까지 DJP 공조를 복구하려 했으니.
그러나 이처럼 결연하기 짝이 없는 여당의 정치행보를 보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각 당의 정강려ㅓ?~ 비추어 DJP 공조를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물론 대통령제하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정당간 공조이므로 독일 사회당과 녹색당간의 연정합의(Koalitionsvertrag) 같은 정책연합의 합의까지 요구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김종필 명예총재와 김 대통령이 복원되었다고 인정한 공조가 과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그저 정권 재창출 또는 차기정권 권력분점을 위한 국회 안에서의 '수의 공조'만이 아니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어떻게 공조하겠다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
집권초기에 구축된 공조를 단지 복구한 것이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그 사이에 남북정상회담등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가. 국민들은 남북관계나 경제정책 등 양당이 견해를 달리 하는 문제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엇을 어찌 하겠다는 것인가. 그런 합의도 없이 그저 수적으로 원내과반수를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둔 공조라면 이는 국리민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또 다른 의문은 이번의 DJP 공조가 지난 연말 김대중대통령 자신이 예고했던 획기적 국정쇄신책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 다시 경제위기를 걱정하며 국정쇄신책을 기다리다가 난데없이 여야간 극한대치사태만을 목도하게 된 국민들의 당혹한 심정은 그렇다 치고, 혹시 이번 공조복원이라는 것이 국정쇄신의 주요부분으로 간주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불가불 국정쇄신의 일환으로 단행될 개각에서 자민련 인사를 다수 입각시키는 형태로 반영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국정의 위기는 집권당으로서 민주당이 지닌 소수여당의 한계보다는 오히려 개혁의 부진에 기인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집권 민주당의 毓旋÷?자신의 정책적 본성과 지향을 분명히 하지 못한데 있었고 그 상당 부분은 집권 초 떠안아야만 했던 경제위기극복이라는 과제의 성격과 자민련과의 무원칙한 공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냉정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조를 하려면 정권재창출이나 정권연명을 위한 수의 공조가 아니라 정책공조를 해야 한다. 품앗이의 대가로 자리 몇 개를 할애해주는 나눠먹기식 공조로는 국정쇄신도, 정국의 반전도 이루어낼 수 없다.
김 대통령과 여당은 진정 국민을 위한 국정쇄신의 길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떤 인재를 어디에 중용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일거수 일투족과 의도를 국민들이 주시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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