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사회에서는 유명 정치인의 '멘토르'(Mentor)가 누군가를 진지하게 논란한다. 멘토르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들에게 지혜를 가르친 현자(賢者)로, 현명한 스승을 일컫는 보통명사로 쓰인다.우리로 보면 정치인이 귀감(龜鑑)이나 존경의 대상으로 내세우는 선배나 역사 속 인물이다. 다만 우리는 대개 진정한 가르침과 무관하지만, 그들은 직ㆍ간접으로 배운 스승의 이념과 덕목을 충실히 따른다.
■영국의 명재상 디즈레일리나 글래드스턴은 후세 정치인의 귀감이지만, 이념적 스승은 아니다.
1980년대 시장논리를 앞세운 보수혁명을 이끈 마거릿 대처의 멘토르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였다. 조지 부시 차기 미 대통령의 스승은 자신의 아버지와 더불어 '온정적 보수주의'를 창안한 언론학자 마빈 올라스키가 꼽힌다.
또 앨 고어 부통령은 도덕적으로 흠결 있는 클린턴을 대신할 뚜렷한 멘토르를 내세우지 못했고, 이게 중요한 패인으로 지적된다.
■우리 정치가 확고한 지향점 없이 노상 방황하는 데는, 이런 멘토르 전통의 부재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신익희나 조병옥을 존경한다는 정치인들이 많지만, 인물 됨과 정치사적 위상을 추앙하는 차원일 뿐 이념적 스승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스승으로 모실만한 현인(賢人) 정치가가 없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시대를 가림 없이 늘 무지하고 살벌하고 조잡한 정치판에서 이념적 스승을 내세우는 것은 별 쓸모 없는 사치라고 여길 법도 하다.
■최근 여당 정치인이 전직 대통령들을 '무슨 무슨 아버지.'라며 돌아가며 존경을 표시, 화제가 됐다. 마냥 비웃을 건 아니지만, 그의 행적이 순수성을 의심케 한다.
전직 대통령들이 마구잡이 독설이 아닌 그럴듯한 충고를 해도 누구 하나 귀담아 듣지 않는 현실에서는, 대통령 친아들이 '국회의원 꿔주기'를 비판한 것이 오히려 가치 있게 들린다.
소신을 위해 정치적 대부의 뜻마저 거스른 자민련 의원의 용기와 함께, 진정한 정치의 귀감과 스승을 찾는 출발점이 되기 바란다. 정치를 바꾸는 길은 그 것 뿐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