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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 조세형, 日 원정절도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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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 조세형, 日 원정절도 '충격'

입력
2001.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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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출소후 결혼과 함께 아빠가 되고, 신앙인으로서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살아온 '대도(大盜)' 조세형(趙世衡ㆍ63ㆍ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진짜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조씨가 일본 도쿄(東京) 한복판에서 대낮에 또다시 절도범행을 저지르다 붙잡힌 사건은 그의 갱생을 믿어 의심치 않아온 모든 이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범행 및 검거

5일 경찰청 외사과와 일본 경찰에 따르면 조씨의 범행장소는 일본 도쿄의 최고급 주택가인 시부야. 조씨는 지난해 11월24일 낮 이곳의 일반주택과 아파트 등 3곳에 잇따라 침입했다. 첫번째 집에서는 손목시계 4개와 휴대용 라디오와 옷가지 등 13만엔 어치를 훔쳐 나왔다.

조씨는 두번째 집에 또다시 무단침입했지만 무인경보장치가 울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후 3시32분 조씨는 부근 아파트에 다시 침입했고 주민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자 인근 동해은행 기숙사로 도주했다.

조씨는 곧바로 추격해 온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 위기감을 느끼자 갖고있던 특수부대용 단검으로 꺼내 휘둘렀고, 경찰은 권총으로 대응했다. 경찰이 쏜 총탄 가운데 두발이 조씨의 볼과 턱을 관통한 뒤 오른쪽 어깨와 팔에 박혔다.

조씨는 검거 직후 현지 경찰병원으로 옮겨져 총탄 제거 수술을 받고 현재까지 입원해 있으나 회복이 빨라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조씨는 검거된 이후에도 일본 경찰에 "나는 44년생 고양빈이며 여권없이 11월23일 밀입국했다"고 주장하고 한국 영사와의 면담도 극구 거부하는 등 한달여간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려 애썼다.

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지난달 15일 조씨에 대해 살인미수와 공무집행 방해 및 주거침입 등 혐의로 기소한 뒤 한국 경찰청에 지문을 보내 신분조회를 의뢰, 뒤늦게 신원이 드러났다. 조씨는 현지에서 재판을 받고 몸이 회복되는 대로 일본에서 복역생활을 하게 된다.

조씨의 범행동기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 그러나 조씨가 1999년 10월 이후 최근까지 선교활동 명목으로 12차례나 일본에 드나들었고 이번에 3곳에서 연쇄 절도행각을 벌인 점에 비춰 일본을 무대로 상습적인 절도행각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배성규기자 vega@hk.co.kr

■조씨의 인생유전

조씨는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재벌 회장과 고위관료 등 부유층과 권력층만을 대상으로 물방울 다이아몬드와 수억대 현금 등 전대미문의 절도 행각을 벌였다.

훔친 금품중 일부를 고아원이나 거지 등에게 나눠주는 기행(奇行)도 서슴지 않아 한때 '의적(義賊)'으로까지 불리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82년 경찰에 검거된 뒤 83년 4월 항소심 재판 도중 서울지법 구치감 환풍기 구멍을 뚫고 탈주했다 다시 붙잡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98년 11월 출감한 조씨는 "신앙인으로서 거듭 나겠다"는 갱생의지를 밝히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99년 4월에는 자신을 검거했던 '수사반장' 최중락(崔重洛)씨의 도움으로 에스원 범죄예방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도둑'에서 '보안관'으로 변신했고 대학과 민간단체들을 상대로 강연활동을 해왔다.

조씨는 또 같은 해 4월 한참 연하의 중소기업인인 이영순(41)씨와 백년가약을 맺었고 지난해 2월에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첫 아들을 낳는 등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다. 조씨는 "못난 애비와는 달리 사회에 보탬이 되는 올곧은 아이로 키우겠다"며 강한 삶의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매주 화ㆍ목요일 서울 중부 을지로의 에스원 범죄예방연구소에 나가 강연 및 현장지도 활동을 하고 늘빛선교원를 통해 선교활동에 나서는 등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부터 선교활동 명목으로 일본으로 출장가는 일이 잦아졌고 같은해 11월 출국이후 에스원 및 주변인들과 연락이 끊어졌다. 조씨가 왜 다시 절도범행을 저지르고 경찰까지 칼로 찌르게 됐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출소 직후 "눈앞에 천만금의 보석이 있어도 거들떠 보지 않겠다"던 맹세와 참회의 눈물은 수십년간 체화한 도벽(盜癖) 앞에 허무하게 무너졌고 또다시 비참한 범죄인으로 전락, 여생을 이국의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배성규기자

■'대도' 조세형 미스테리

조세형씨는 왜 '범죄전문가'와 안락한 생활인의 길을 버리고 이국땅에서까지 절도행각을 벌였을까. 가족과 직장동료, 경찰 등 주변인들은 조씨의 범행소식에 한결같이 "믿어지지 않는다" "전혀 낌새도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씨는 에스원 범죄예방연구소에 근무하며 한달에 200여만원의 적지않은 월급을 받았고, 각종 강연이나 간증활동으로 인한 부수입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아내가 자동차 액세서리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다, 48평짜리 대형빌라에 사는 등 생활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경제적 요인 보다는 오랜 도벽이나 심리적 요인이 범행의 원인일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범죄 전문가들은 "개과천선후 억눌려온 도벽(盜癖)과 잠재적 범죄욕구가 생활공간이 외국으로 바뀌면서 다시 살아난 것"으로 해석했다. 국내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 유명세 등으로 인해 스스로 행동에 제약을 받아왔지만 외국에서는 '억제 기제'가 약화하면서 '야누스'적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가족과 친구, 안정된 생활 등 범죄억제요인이 공간적 환경변화로 크게 약화한 데다, 잦은 일본생활로 인한 일시적 금전부족이나 심리적 한계상황에 봉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찰대학 표창원(범죄심리학)교수도 같은 견해를 제시한 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이나 주식투자를 하다 궁지에 몰렸거나, 선교회 운영 및 전과자들에 대한 후원으로 인해 자금난을 겪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추측했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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