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 소환 조사를 시작으로 안기부 총선자금 불법 지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본격 사법처리 수순에 돌입했다. 검찰의 발빠른 행보는 계좌추적 등을 통해 이미 사건 윤곽이 파악됐고 어느 정도 물증까지 확보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검찰은 안기부 예산을 총관지휘한 김 전 차장에 대한 조사를 통해 안기부 예산으로 조성한 불법 비자금과 정확한 총선자금 지원규모, 사건 관련자들을 파악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차장이 핵심인물이기 때문에 수사도 김전 차장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안기부의 총선자금 지원 과정에 김 전 차장이 안기부와 신한국당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음을 내비쳤다.
따라서 김 전 차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일단락된 뒤 권영해(權寧海)전 안기부장을 포함,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으로 선거자금을 관장했던 강삼재(姜三載) 한나라당 의원과, 재정국장이었던 조익현(曺益鉉) 전 의원 등 신한국당 핵심 당직자들과 당시 청와대 관계자 등에 대한 소환조사가 뒤따를 전망이다.
검찰은 안기부가 예산을 불법전용해 조성한 비자금 500억여원, 기업 등에서 갹출한 기업자금 500억~600억원 등이 뒤섞여 대략 1,000억~1,100억원 가량이 신한국당에 총선자금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대상은 안기부 자금에 국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자금이 신한국당 선거자금 계좌로 들어가 총선에 지원됐다 해도 97년 정치자금법 개정전인데다 정치자금법 위반 공소시효(3년)가 지나 형사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기부의 비자금 규모 및 조성 경위 못지 않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문제가 김영삼(金永三) 전 대통령 등 당시 권력핵심의 개입 여부 및 조사 여부.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이번 사건에서 관련자 사법처리가 핵심은 아니다"고 말해왔다.
안기부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 불법 총선자금 지원과 같은 행위를 근절시키는 것이 수사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안기부의 총선자금 지원 사실을 사전 또는 사후에라도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규명해야 한다는 점과 통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을 통해 사건의 실페를 규명해 내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 전 대통령은 환란 사건과 관련, 98년 감사원 서면감사와 검찰의 서면조사에 응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환란 사건이 '정책판단'에 관한 문제였던데 비해 이번 사건은 정치적 폭발력이 큰 '통치자금'과 관련된 문제다.
또 김 전 대통령이 어떤 정치적 카드를 들고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박진석기자
jseok@hk.co.kr
■권영해·김기섭씨
권영해(權寧海)전 안기부장과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은 YS정권 당시 자타가 공인했던 핵심실세.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정권말기부터 급속히 추락하기 시작, 2~3차례씩 기소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이번에 검찰에 의해 안기부 총선자금 불법지원 사건의 중심인물로 지목됨으로써 또다시 사법처리될 처지에 놓였다.
권씨는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金泳三)후보에 대한 군의 지지를 이끌어낸 공으로 문민정부 첫 국방장관으로 발탁돼 하나회 숙청 등 군개혁에 앞장섰다. 93년 12월 포탄도입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라 장관직을 물러났지만, 이듬해 3월 한국야구위원회(KBO)총재를 거쳐 12월 안기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이후 97년 대선전 윤홍준씨의 '김대중 후보 비방 기자회견', 오익제 편지사건 등 북풍공작을 주도한 사실이 드러나 98년 4월 구속기소됐다.
또 각종 공안사건을 조작하고 안기부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 관련된 사실이 드러나 4차례나 추가기소된 끝에 99년 4월 징역5년이 확정돼 복역하다 지난해 1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김씨는 86년 신라호텔 판촉실장으로 재직 중 동문 소개로 YS와 첫 인연을 맺은 뒤 90년 3당 합당후 상도동 캠프에 합류, YS의 의전ㆍ민정특보로 일했다.
14대 대선 당시 대선자금 조달역을 맡아 YS의 신임을 얻고 김현철(金賢哲)씨와 교분을 쌓아 문민정부 출범후 안기부의 인사와 예산을 책임지는 기조실장과 운영차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케이블 TV사업권과 관련,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97년 5월 구속기소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98년 6월에는 한솔PCS로부터 PCS사업자 선정 부탁과 함께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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