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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 소설당선작 '남문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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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 소설당선작 '남문석씨'

입력
200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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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당선자 남문석씨 인터뷰184cm의 훤칠한 키에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있는 청년이다. 소설 당선자 남문석(南文石ㆍ34ㆍ본명 남용석ㆍ南勇釋)씨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다소 흥분된 얼굴로 나타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소설만 쓰기로 작정했지요." 남씨는 문학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번듯하게 직장도 잘 다니다가, 3년 전 문득 소설만 써야겠다며 다른 일을 다 접었다. 이후 자취방에 틀어박혀 습작하면서, 세종대에서 강의하던 이문열씨의 소설론을 도강하기도 하며 홀로 소설 수업을 했다.

당선작 '잃고, 묽고 희박한'은 남씨가 처음으로 완성해 신춘문예에 응모한 소설이다. "대학 영화서클과 독립영화 워크숍 활동을 하며 영화에 관심을 가진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이 내 길이라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당선작은 날치기 20대 청년(이름은 정보화사회의 디지털을 의미하는 '이진수'이다)과 가방을 날치기당한 장년 남자(이름은 산업화사회의 노동자를 의미하는 '일한'이다)가 휴대폰과 공중전화로 씨름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사람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질문한 소설이다. 시대적 징후를 포착한 신선한 상황 설정에 영화처럼 흥미로운 전개가 시선을 붙든다.

"이제 홀가분하게 쓸 수 있을 것같습니다. 진지한 주제를, 미국작가 레이몬드 카버나 일본의 하루키처럼 경쾌한 문체에 담고 싶습니다." 남씨는 습작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운동 삼아, 아르바이트 삼아" 새벽마다 신문배달을 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소설부문 당선자 남문석씨 소감

결국, 종로 근처 포장마차로 갔다. 한참 후, 밖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듯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 축포가 터지고 있었다. 행인들이 멈춰 서서 삼삼오오 이를 구경할 때쯤 포장마차 주모가 나와, 어디서 개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까운 곳에서 터지는 불꽃은 처음 보았다. 이것도 좋은 일이다.

음악이 흘러나오며 전체적으로 훈훈한 곳으로 2차를 갔다. 손님들이 각자 테이블에 앉아서 함께 음악에 귀기울이거나 따라 부르는 분위기였다. 내가 얼근하게 취해 갈 때쯤 선배가 벌써 축하파티 이야기로 농담을 하며 날 놀렸다.

나도 유쾌하게 웃으며, 꼰 다리를 음악 장단에 맞춰 흔드는 것으로 화답했다. 선배에게 요즘 소설 쓰는 재미가 쏠쏠하고 그것이 기쁘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테이블에 있는 낙서장을 펼쳐보니 '우이씨, .투덜투덜 .실제상황이다'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당선이 되어 파티를 열어도 이만큼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라는.. 취해 있었지만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난 이미 파티를 열고 있다. 이게 파티가 아니라면 우리 생애에 파티는 없는 거다.

원고를 낸 마감날 밤에 일어난 일들을 적어보았다. 여름부터 용케 밟히지 않고 가끔씩 나타나는 딱정벌레 같이 생긴 녀석이 내 방 어딘가에 있는데, 그에게 이 날파리가 마음속 깊이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추신. 아, 화이트 나이트.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약력

▦ 1967년 경북 포항 출생

▦ 1994년 고려대 토목공학과 졸업

▦ 1996~8년 동부화재 근무

■소설부문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의 전체적인 수준은 소설 수업을 많이 했다고 인정받을만큼 향상되었다. 그 가운데 서정아의 '내 방에는 달팽이가 산다', 김효민의 '다리 건너 그녀의 천국', 김종옥의 '허위에 대하여', 남문석의 '잃고, 묽고 희박한' 등 4편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내 방에는 달팽이가 산다'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사는 한 여성의 일상적 삶을 다룬 페미니즘 소설로서 '달팽이'의 설정이나 묘사력에서 문학적 재능을 읽을 수 있었지만 너무 흔한 이야기로 끝나고 있다는 아쉬움이 컸다.

'다리 건너 그녀의 천국'은 글을 이끌고 가는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불륜을 다루는 방식이나 그에 대한 문제의식에 독창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됐다. '허위에 대하여'는 소설에서 요구되는 에피소드의 설정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음 기회로 미루어졌다.

'잃고, 묽고 희박한'은 속도감 있는 문체와 독창적인 상황 설정이 돋보였다. 들치기를 한 주인공과 이를 뒤쫓는 가방 주인 사이의 휴대폰과 공중전화의 대결이라는 구도를, 재치있는 결말을 통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완성한 작품으로 단연 돋보였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면서 작가의 정진이 한국 소설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를 기대해본다.

/심사위원= 이문구 김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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