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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설 / 리더십 위기를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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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설 / 리더십 위기를 극복하자

입력
200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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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새 아침이 밝았다. 역학(曆學)상으론 올해가 진짜 새 천년의 시작이라고 한다. 구랍 한국일보의 한 대표적 칼럼이 올해를 '새 천년의 재수(再修)'라고 지적한 이유다. 뉴 밀레니엄이라고 떠들썩했던 지난해의 요란 때문인지 정작 새 천년의 시작은 담담하고 차분하다.여느 해 같으면 덕담으로 한 해를 시작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듯 하다. 안팎으로부터의 도전과 시련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역사가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지만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엔 우리의 토양이 너무 빈약하고 척박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삶에 찌든 어둡고 우울한 얼굴들이다. 세상이 온통 잿빛이다.

시계(視界)마저 불투명하다. 이것이 2001년을 맞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좌절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체념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하고 극복하느냐가 올해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이다.

1년 전 오늘, 그래도 우리에겐 불확실함 속에서나마 작은 희망이 있었다. 세계 일류 국가로 가는 꿈이 그것이다. 종합주가지수 1,059.04, 코스닥지수 266.00. 불과 2년여 전에 환란(換亂)을 치른 나라라고는 믿기지가 않을 만큼 안정적이고 탄력적인 시장 구조였다.

자신감을 얻은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세계 일류 국가로 가는 원년'이라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불과 1년 사이, 구랍 26일 폐장일의 종합주가지수는 504.62, 코스닥지수 52.58로 마감해야 만 했다. 주가는 반감했고 코스닥은 5분의 1로 토막 나버렸다. 두 시장에서 증발해 버린 돈의 가치가 자그마치 230조원이다. 그야말로 처참한 추락이 아닐 수 없다. 증시도, 경기도, 살림살이도 이처럼 모두가 깡통 신세가 되고 말았다.

"외환 위기 극복을 경제문제의 해결로 착각했다"는 대통령의 때늦은 참회가 있었다. "많은 국민이 어려움을 겪게 된 책임은 충분한 대비를 못한 정부에 있다"는 고해도 있었다.

이 참회나 고해가 다시 뛰게 하는 동력이 돼야 한다. 반토막 난 증시에서 100조원을 날린 개미군단도 대통령의 이 말에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을 줄 안다.

그렇다. 오늘의 위기는 바로 지도력의 위기(leadership crisis)에서 비롯되었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올바르게 마련이다. 그래야만 환부를 치유할 수가 있다. 오늘의 위기가 지도력의 위기 임을 인식한다면 해결책은 어렵지 않다. 난국 타개의 첩경은 바로 지도력의 신뢰 회복이다.

이를 위해 꼼수의 정치가 아니라 정도(正道)를 지향하는 정치, 편 가르기가 아니라 통합의 정치, 상극의 정치가 아니라 상생의 정치, 파괴적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창조적 화합의 정치여야 함은 재론이 필요치 않다. 결코 얕은 꾀로는 깊은 강을 건널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뼈아픈 자성의 토대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나 재벌불패(財閥不敗)의 환상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2000년 김우중씨의 몰락이 이를 웅변한다. 말로만 구조조정을 떠들게 아니라 정부와 공기업이 솔선해야 한다.

서민을 탓하기 전에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부터 바로 잡는 게 순리다. 이반된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경제체제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시장의 신뢰를 얻는 관건은 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의 유지다. 4대 개혁의 마무리 없는 새 천년은 그래서 사상누각이다. 온갖 위선의 허울은 벗어 던지자. 번지르한 외양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지혜가 요구된다. 승리를 위한 퇴각이야말로 통치의 진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심각한 사회적 통합의 과제가 놓여 있다. 지역감정의 골은 망국적이라 할 만큼 깊고 넓게 패었다. 선거철엔 특히 기승을 부린다. 유감스럽게도 이 정부에서 더욱 심화한 감이 없지 않다. 지역 편중, 패거리 인사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아니라고 둘러만 댈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 노력을 다 해야 한다.

한반도에도 탈냉전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가 이룬 결실이다.

휴전선 지뢰밭을 일궈 끊어진 경의선을 잇고, '먹고 먹히는'통일의 포기선언도 있었다. 상대의 부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던 지난날과는 딴판이다.

미국의 새 정부가 대북문제를 보다 엄격하게 다루리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확고한 대북 이니셔티브로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올해는 선거가 없는 해다. 3년차에 접어든 이 정부가 혼신을 다하면 난국의 극복도 가능하리라 본다. 저명한 비평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IMF 직후 "한국의 위기가 '하늘이 내린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하늘이 내린 축복'의 성취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렸다. 새해 아침에 우리 모두 그 결의를 함께 다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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