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을 총괄 집행하게 될 여성부 신설은 올해 여성계에 최대의 선물이 됐다.27일 국회를 통과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라 내년 1월 신설되는 여성부는 앞으로 여성정책 집행에 확실한 힘을 실어 주었다.
기존의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는 입법ㆍ사법권이 없어 정책 집행에 한계가 컸다. 이 때문에 자체 법과 행정력을 갖춘 중앙행정부처로의 승격은 여성계가 오래 전부터 요구해온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지 3년 만에 이루어진 여성부 신설은 '장애물 경기'에 비유될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성부 신설 과정은 현 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한 인식의 척도로 삼을 만하다. 여성부 탄생의 의미, 앞으로의 과제 등을 점검한다.
여성정책 전담기구를 하나의 부처로 두는 것은 세계에서도 몇 국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획기적인 조치다. 우리나라는 1998년 UN 여성차별 철폐보고서가 법ㆍ정책면에서 아시아의 모범국가로 소개했을 정도로 외형적으로는 여성 선진국이다.
그러나 여성부 신설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남녀차별을 효율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출발했던 만큼 현실은 딴판이다. 가부장제적 전통이 강한 국내에서는 교육ㆍ고용 등에서의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사소한 일상생활에서의 여성비하는 일일이 따지기 힘들 정도다.
세모를 며칠 앞두고 27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간신히 국회를 통과했을 때 경제ㆍ교육 부총리 신설에 대해 반대입장을 취했던 야당도 여성부 신설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던 것도 남녀차별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여성부에 줄 권한을 두고서는 의견이 갈라졌다. 연초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여성부 신설 문제가 제기돼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여성특위를 중심으로 여성계가 요구한 여성부의 안은 아동ㆍ노인복지 등 가족정책까지를 아우른 포괄적인 기구였다.
그러나 관련 부처의 반발로 업무영역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법안을 준비하던 여성특위 공무원은 "지나치게 고집을 부리다가는 여성부 신설안마저 무산될 것 같아 외부의 반발을 피하는 쪽으로 부처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7월 국회상정을 앞두고는 청소년 업무까지 포괄한 여성청소년안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정책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철회됐다.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를 거쳐 1월 탄생하게 될 여성부는 남녀차별 개선과 여성인력 개발을 양대 업무로 했던 여성특위의 기존업무를 승계받는 외에 가정폭력ㆍ성폭력 피해여성에 대한 보호, 윤락행위 방지 등을 보건복지부와 노동부로부터 넘겨받게 된다. 이밖에 군대위안부 생활지원, 여성사회교육의 활성화 등이 추가됐다.
내용적으로는 기존 여성특위 업무를 소폭 개편한 정도이다.
여성부 신설의 의미는 그보다는 여성정책담당기구가 처음으로 입법ㆍ준사법권을 갖춘 중앙부처로 승격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인습ㆍ편견과 맞물려 남녀 차별 정도가 심한 지방에까지 행정지도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소득이다. 부처간 정책 조정ㆍ총괄기능과 함께 집행력도 강화됐다.
법률이 공무원들의 업무 수행 근거라면 신설 여성부는 근거법이 6개로 '무기'는 충분히 확보한 셈이다. '여성발전기본법'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 등 여성특위가 기존에 갖고 있던 2개 법 외에 4개법을 타부처로부터 넘겨 받는다.
이상덕 여성특위 정책조정관은 "여성부 신설로 앞으로의 여성정책이 질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여성정책은 무엇보다 여성의 시각으로 보아야 적극적인 정책개발과 집행의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1월 출범할 여성부의 규모를 두고 여성특위와 행정자치부 간에 마지막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여성특위가 제시한 여성부 규모는 현재 여성특위의 3배 가량인 직원 123명에 1실 3국 체제. 여기에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1급 상당 별정직을 상임위원으로 두는 남녀차별개선위원회가 있다.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현재 여성특위의 차별개선실 업무가 많아진데다 안건들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필요성에서 기구를 확대시킨 것이다.
그러나 행정자치부안은 83명 규모에 1실 2국 체제의 '초미니 부서'로 하자는 것이다. 두 부처의 입장 차이가 커 막판까지 협상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한편 허울뿐인 여성부를 경계하고 있는 여성계측에서는 어엿한 규모의 부처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6개 부처에 설치돼 있는 여성정책담당관실을 전 부처로 확대할 것과 지방자치제와의 정책 연계가 긴밀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선조직을 확보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성부라고 공무원들이 여성 위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이든지 한 성(性)이 60%를 넘어서 다른 한 성을 소수화해서는 안된다'는 UN권고안을 감안해서라도 남녀 공무원 비율이 엇비슷한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여성특위 내부의 의견이다.
■여성정책 전담 정부기구
여성의 지위향상,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여성 정책을 전담하는 정부의 독립적 행정기구는 1980년대 말에 들어서야 등장했다. 1988년 발족한 정무제2장관실이 사실상 최초이고,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단순히 여성을 대상으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차원에 불과했다. 건국직후의 사회부와 지금의 보건사회부의 부녀국에서 여성업무를 관장하며, 윤락여성 또는 가족계획을 중심으로 모자보건 등 사회적 보호와 감독이 필요한 여성의 복지 차원에서 여성문제에 접근했다. 여성을 성적 평등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보호가 필요한 계층으로 인식하는 정도였다.
여성계가 여성정책 전담부서의 신설을 요구하고 정부가 1984년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에 조건부로 비준함으로써 여성의 지위 향상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여성 정책의 개발 및 집행을 추진할 행정기구가 요구된 것이다.
1988년 6공화국 출범과 함께 발족한 정무제2장관실은 각 부처의 여성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실질적 집행력은 갖지 못했다.
정무제2장관실은 현재까지 여성정책 수립의 근간이 되고 있는 여성발전기본법을 1995년 제정하면서 완전한 여성정책 전담기구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또한 이 자리를 거쳐간 조경희 초대장관을 비롯, 김영정 이계순 김갑현 권영자 김장숙 김윤덕 이연숙씨 등 8명의 장관이 모두 여성으로서, 행정부에 최소한의 여성장관 몫을 확보하는 의미도 있었다.
국회의원 출신 혹은 여성단체의 대표 등이 중앙정계에 진출하는 거점으로서, 개각 때마다 여성계의 거물들이 낙점을 기다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현정부에서의 여성정책 전담 기능은 1998년 3월 출범한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로 옮겨졌다. 법무부, 행정자치부, 교육부, 농림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 6개 부처에는 해당부처의 업무나 정책 등이 남녀평등에 위배되지 않도록 모니터링하는 여성정책담당관이 신설됐다.
여성특위는 여성정책 조정 업무에 남녀차별 개선의 비중을 높였고, 국내외 여성단체의 협력 지원과 정책 기획도 수행해왔다.
그러나 남녀차별 행위에 대해 시정권고만 가능할 뿐 입법권과 준사법권이 없고 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표결권을 갖지 못하는 등 정책 집행에 한계가 있었다.
윤후정 강기원에 이어 현 백경남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여성특위가 존속하는 동안에도 여성부로의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여성특위 3년활동 결산
1998년 2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만들어진 여성특별위원회는 여성부를 탄생시키기 위한 중간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부 신설은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다, 그러나 작은 정부의 논리에 밀려 여성특위로 축소출발하면서부터 여성부 신설은 뒤로 미루어졌다. 여성특위 공무원들은 올해 내내 행정자치부와 국회, 여성계를 오가며 여성부 신설작업을 해왔다. 역설적이지만 여성부를 만들어 낸 것이 여성특위의 가장 큰 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년 10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여성특위의 업적으로 들 만한 것은 윤후정(전 이화여대 총장)초대 위원장이 추진해 99년 초에 입법화한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과 성희롱 문제를 사회문제로 이슈화한 것을 들 수 있다.
99년 7월부터 시행된 '남녀차별금지법'은 피해자의 신고 없이도 남녀차별을 직권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특위에 부여하는 한편 성희롱을 법적 처벌대상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성희롱을 '새로운 차원의 여성차별'이라는 인식으로 확산시킨 것도 여성특위의 성과다..
그러나 여성특위의 업무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도 적지 않다. 위원회라는 위상 때문에 집행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불가피하더라도 적극성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남인숙 사무총장은 "다른 부처의 여성정책담당관실과 공조, 각 부처들이 여성정책을 우선순위로 이행하도록 독려하지 못했다.
또 지도층 인사들의 성희롱 사건이 빈번했지만 주무 부서로서 대응이 미약했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IMF 이후 차별 받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대책과 장기적인 비전 제시 등이 부족했던 것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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