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희망과 환희 속에 시작된 새천년의 첫해. 그러나 사회지도층의 부도덕한 행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의약분업을 둘러싼 이익집단간 힘대결과 대형 파업사태에다, 또다시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2000년은 '의혹과 파문, 추락'의 한 해로 전락해 버렸다.이 와중에서도 총선에서 나타난 시민운동의 가능성과 남북화해의 물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됐다.
'옷로비'이어 '몸로비''연서'파문
◆ 의혹공화국
옷로비 의혹사건의 여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5월 국방부의 백두ㆍ금강사업을 둘러싼 '린다김(47) 몸로비 파문'이 터지면서 고위층들의 은밀한 연서(戀書)와 '부적절한 관계'가 세간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8월에는 한빛은행 불법대출 의혹사건이 불거지면서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 장관이 물러났고 집권층과 검찰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신용보증기금 이운영 전영동지점장에 대한 불법수사로 사직동팀이 검찰조사를 받고 급기야 해체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뒤이어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과 진승현 MCI코리아 사장 등 벤처인들의 신용금고 대출비리사건이 터지면서 금융감독원 장래찬 전국장이 자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벤처비리 사건에 정ㆍ관계 고위층의 연루의혹이 제기되면서 벤처기업과 권력층에 대한 불신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연말에는 지난해 발생한 청와대 총기사건의 축소ㆍ은폐의혹이 제기돼 청와대 경호실과 경찰에 대한 비난론이 거세게 일었다.
연예인 포르노·원조교제 기승
◆ 섹스, 원조교제, 비디오테이프
올 한해를 달군 사회적 '화두'는 단연 섹스파문이었다. 연초 김강자 종암서장의 미아리 윤락가 단속이 파장을 일으킨 데 이어 11월에는 인기절정의 여가수 백지영(24)씨의 섹스비디오 사건이 터져나왔다.
특히 백씨의 비디오동영상은 프라이버시 보호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촉발시켰다. 또 인기개그맨이자 사업가인 주병진씨의 여대생 성폭행 사건으로 연예계 인사에 대한 자성론과 비판론이 일었다.
지위나 신분,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확산된 원조교제의 바람은 사회규범과 가족윤리까지 파괴하는 '사회의 독버섯'으로 발전했다.
경기 용인의 파출소장과 우체국장 등 지역유지들이 무더기로 10대소녀와 원조교제 행각을 벌이는가 하면 이달초에는 30대주부가 남자고교생과 원조교제를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10대 꽃뱀'과 '소녀포주' '원조 살인' 등 2차범죄도 급증하고 '원조교제'가 직업이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고위인사 잇단 비도덕적 행태
◆ 뿌리깊은 도덕불감증
"있는 사람이 더하다(?)." 올들어 일부 사회 지도층의 비도덕적 행위와 끝까지 이를 감추려는 속보이는 변명이 결국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자조섞인 한탄과 함께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도덕적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었다.
두 딸의 이중국적 문제와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주식을 통한 거액의 시세차익 시비로 지난 8월 취임 20여일만에 낙마한 송 자 전 교육부장관과 학력허위 기재 논란으로 3일만에 옷을 벗은 박금성(朴金成) 전 서울경찰청장은 대표적 사례.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술판을 벌였던 386 정치인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의 행태와 시민단체 지도급 인사 장 원씨의 성추행 파문, 최근 불거져 나온 각종 특례입학 비리 등은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더욱 큰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낙선운동·노벨상등 희망의 빛
◆ 변화의 물결
"바꿔, 바꿔, 세상을 다 바꿔." 새천년 첫 총선은 총선시민연대의 대대적인 낙선운동과 함께 시작됐다.
뿌리깊은 정치불신에 지친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400여 시민단체가 힘을 모았다.
운동의 적법성 시비 등 온갖 격랑을 헤치고 진행된 낙선운동은 결과에서도 낙선 대상자 86명중 59명(68%)을 떨어뜨리고 특히 수도권에서는 대상자 20명 가운데 19명을 퇴출시키는 등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정권 출범과 함께 햇볕정책을 주창해 온 정부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함께 분단 50년만의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고 그 성과로 김 대통령이 한국 역사상 최초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한편, 경기 일산, 분당 등 신도시 주변에 독버섯처럼 확산되던 러브호텔이 주민들의 대대적인 반대시위로 건설중단, 준공검사 금지 등 저지당하는 등 뿌리깊게 자리잡아 온 기존 권력과 관념에 일대 변화가 인 한 해이기도 했다.
사이버공간 위력 날로 가중
◆ 사이버공간의 반란
온라인(on-line) 속의 가상공간은 가공할 위력을 가진 현실로 다가왔다.
해킹을 통해 고객의 정보를 유출, 거액을 챙기는 크래커들이 등장했고, 각종 사이트의 게시판이 여론 형성의 중요한 마당으로 자리잡았는가 하면, 유명 연예인의 포르노 동영상은 단 3일만에 전국을 덮어버리는 가공할 전파력을 보였다.
소위 '자살 사이트'를 통해 만난 두 젊은이가 동반자살을 하고, 또 이 사이트를 통해 살인청탁이 거래되는가 하면, 자신이 숭배하는 연예인이 비난받을 경우, 익명성을 이용한 팬클럽의 무차별 반격이 자행됐다.
이 같은 사이버 공간의 급속 성장은 새로운 현실세계에 대한 시급한 규범 정립의 필요성과 함께 21세기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의·약계, 금융등 이익집단 힘겨루기
◆ 이익집단과 파업, 파업
올 한해 환자를 둔 가족들은 병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4월부터 7개월여간 계속된 사상 초유의 '의료계 폐ㆍ파업'으로 수많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못해 발길을 돌려야 했으며 암 등 난치병을 앓던 중환자들은 시시각가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생명을 볼모로 한 인질극'이란 전국민적 비난에도 굳건히 버티던 의료계는 결국 지난 11월 자신들의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한 정부의 법 개정안을 얻어내는데 성공함으로써 씁쓸한 '힘의 논리'를 각인시켰다.
대표적 화이트 칼라 계층인 은행원도 대형 지주회사 설립 등 정권의 금융 구조조정안에 반대, 지난 7월 대대적인 총파업을 벌였다.
들끓는 비난 여론에 노조 등 파업 주체들은 "파업은 정당한 권리"라고 항변했지만, 직ㆍ간접적인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된 힘없는 서민들은 남몰래 멍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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