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테니스스쿨을 운영하며 앤드리 애거시, 모니카 셀레스 등 세계 톱랭커들을 길러낸 릭 볼리티에르는 남자테니스계를 정글에 비유한 적이 있다.해마다 2,000명이 넘는 프로선수들 가운데 128명이 겨루는 메이저대회 본선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형택(24ㆍ삼성증권)은 험한 정글을 뚫고 한국테니스에 희망을 심었다.
9월 US오픈 당시 세계랭킹 182위였던 이형택은 경기마다 기적을 이어갔다. '러키루저(lucky loser)'로 출전하는 행운 끝에 우승컵을 안은 브롱크스챌린저 이후 이형택은 US오픈 32강에 오를 때까지 무려 11연승 행진을 벌였다.
세계랭킹67위 라이너 슈틀러(24ㆍ독일)를 3_1로 꺾고 16강행이 확정된 순간 관중석에 앉아 있던 주원홍 감독은 곧장 코트로 뛰어 내려갔다.
이형택은 심판과의 악수도 미룬 채 주원홍 감독을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훔쳤다. 비록 16강전서 메이저대회 최다우승자 피트 샘프러스(28ㆍ미국)에게 패했지만 경기가 끝난 뒤 네트를 사이에 두고 악수를 나눌 때 이형택의 표정은 무척 밝아보였다.
흥분한 것은 한국만이 아니었다. 주관방송사 CBS는 '이형택스토리'를 제작해 내보냈고 뉴욕타임스도 '감자골 출신의 무명 테니스인이 미국을 흔들었다'며 비중있게 다뤘다. AP, AFP 등 주요 외신들도 16강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동양인 이형택 주위로 몰려들었다.
뉴욕 맨해턴에 사는 존 호프만 부부는 직접 새긴 응원피켓을 들고나와 이형택의 플레이에 박수를 보냈다. 돌풍은 미국에서 끝나지 않았다.
챌린저급인 요코하마에서 준우승, 삼성증권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더니 첫 자동출전한 투어급인 삼성오픈에서도 4강에 진출, 세계랭킹을 90위까지 끌어올렸다.
이형택 돌풍은 적어도 우리 스포츠계에 한 가지 교훈을 확실히 남겼다. 세계무대를 노리려면 그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두 자리수 랭킹은 어림없다는 비아냥을 무릅쓰고 5년 전부터 끊임없이 해외무대를 노크하지 않았다면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원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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