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 '고잔도장축도'(古棧道長軸圖)의 공개를 계기로 안견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전칭작품과 안견 화풍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이 그림이 안견의 진적인지 확인하려면 신중한 검토를 거쳐야겠지만, 아직 최종 판정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주장을 소개하는 것은 이 그림의 존재가 기존 안견론을 뒤흔들 폭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의 통설은 안견의 진적은 일본 텐리대도서관의 몽유도원도 뿐, 국내에는 없다는 것이다.
안견의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 18점, 간송미술관 1점, 서울대박물관 1점과 개인 소장 등 20여 점이 남아있으나, 모두 '전(傳) 안견' 즉 안견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동안 안견 그림에 대한 논의는 '몽유도원도'를 기준으로 이뤄져왔다.
그러나, 재야 미술사학자 이건환, 이양재씨 등은 몽유도원도는 안견 연구의 기준작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몽유도원도는 다른 전칭작품과 비교할 때 매우 별난 그림이며 이는 화가의 의도보다 안평대군의 주문에 충실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기준 삼은 안견론은 잘못된 것이며, 안견 전칭작품의 진위를 다시 가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검토 결과 전칭작품이 진적으로 공인된다면, 없다던 안견의 진품이 쏟아지는 것이니 나라의 경사다.
안견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안휘준 교수(서울대)가 이들 작품을 '전 안견'으로 신중하게 분류하는 근거 중 하나는 침형세수(針形細樹ㆍ바늘 모양의 나무 표현법)의 단선점준(짧은 선을 내려긋는 준법)이다.
안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단선점준은 16세기 그림의 특징인데, 안견은 15세기 사람이므로 단선점준이 나타나면 안견의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건환ㆍ이양재씨는 안 교수의 이른바 침형세수 단섬점준은 조선 중기 문인화가 공제 윤두서가 서화 감상기인 '기졸'(記拙)에서 말한 '찬침준'(바늘을 모아 놓은듯 나무를 그리는 표현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안견 초기 작품의 특징이라고 반박한다.
찬침준은 이번 고잔도장축도의 산등성이 나무 표현에 자주 보이며, 사시팔경도ㆍ소상팔경도(국립박물관 소장) 등 전칭작품과 심지어 몽유도원도의 그림 왼쪽 끝에도 나온다는 것이다.
윤두서는 안견의 '설천도'(서울대박물관 소장)에 부친 '기졸'에서 안견 화풍을 논하면서 "나무는 바늘을 모아놓은 듯하고(찬침준) 바위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하다(운증준)"고 쓰고 있다.
전칭작품의 하나인 '적벽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 대해 안휘준 교수는 인물 묘사가 산수 표현보다 훨씬 우수하여, 산수화보다 인물화에 뛰어났던 화가가 그린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양재씨는 안견이 안평대군과 광평대군의 초상과 태조ㆍ정종ㆍ세종의 어진을 그린 뛰어난 인물화가이기도 했다면서 '적벽도'를 안견 작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안견을 산수화의 대가로만 보는 단견에서 빚어진 오류라고 주장한다.
이건환ㆍ이양재씨는 1994년 공저 '안견 재조명'을 통해 안휘준 교수의 안견론을 비판하고 전칭작품의 재검토를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안견의 '청산백운도'(이원기 소장) 공개가 계기가 됐었다. 이번 고잔도장축도의 출현은 다시 한 번 논쟁의 불씨를 던지고 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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