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친구가 어느날 일기를 썼다. 그날 일기의 제목은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였다. 젊은 친구는 펜 대신 디지털카메라를 들었다.원래 일기란 특별한 형식이 없다. 그래서 그는 고작 600만원을 들여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상상력을 펼쳤다. 남기웅(32)는 대학을 낙방하고 1992년 곽재용 감독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2'의 연출부 막내로 영화에 입문했다.
서울 불광동에서 웨이터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고전문학과 용사상'이란 책을 읽고 비디오 카메라로 하루만에 '강철' 이란 단편을 만들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듬해에야 SF판타지를 지향하는 독립영화단 "화롯가의 아들"의 도움으로 완성했고 올해 부산 아시아 단편영화제 비디오 경쟁력 부문 은어상(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그가 1인 5역(감독,각본, 촬영, 편집, 음악)을 맡은 '대학로에서 매춘하다...'역시 만화적 상상력과 SF적 판타지, 호러가 뒤섞여 있다.
남기웅은 이를 "잡종.즉흥. 혹은 영화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다. 광각렌즈로 찍은 영상, 신체를 변형시키는 엽기적인 장면, 악마주의를 연상시키는 오페라 음악이 영화를 독특하고 기괴한 분위기로 몰고간다.
그 속에 담긴 기성사회에 대한 섬뜩하고 통쾌한 조롱과 풍자, 음습하고 어두운 지옥 같은 풍경의 대학로 밤거리에서 한 여고생(이소윤)이 매춘을 하고, 그 현장을 적발한 담임 선생도 그와 성관계를 가진다.
그 선생을 사랑하는 여고생은 보름달이 뜬 날 임신을 하고, 선생을 그 사실을 숨기려 점박이 3형제를 시켜 그를 토막살해한다. 그래서 사이보그로 부활한 여고생. 통쾌한 복수는 그가 남자의 성기 모양을 한 총으로 막 교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교사를 죽이면서 끝난다.
인형소리 같은 여고생의 신음소리, 샤머니즘적인 보름달 밤의 임신, 도시를 저주하는 듯한 천사의 노래, 탈출구 없는 세상을 암시하는 열리지 않는 화장실문, 부활을 상징하는 노파와 재봉틀 소리, 사이버적 액션이 갖는 은유와 상상력이 예사롭지 않다.
그냥 혼자 제멋대로 쓴 일기라고 버려두기에는 아까운 재능들이다. 30일 하이퍼텍 나다 개봉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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