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는 있었으나 진군(進軍)은 없었다.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 3년동안 '구조조정'이라는 행진곡을 요란하게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상처뿐인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자리에 서 있는 초라한 몰골이다.
성탄절 경기는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일반 상인들이나 택시기사들은 한결같이 "3년전 IMF 때보다도 손님이 적었다"고 말했다. 저자거리의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야말로 '고요한 밤'이었다.
내년도 한국경제전망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등 국내의 관변ㆍ민간 경제예측기관은 물론이고 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외국기관들까지 "한국경제가 내년에 4~6%의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이한 일이다. 불황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사람들로서는 '웃기는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모든 경제예측기관이 중요한 단서를 하나 달고 있다는 점을 알면 약간 이해가 간다.
바로 경제구조조정의 성공이다. 이는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한국경제는 추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정부당국자들은 이 대목에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구조조정을 했는데 이렇게 폄하할 수 있느냐고.. 구조조정이 많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은행불패(銀行不敗)의 신화가 깨지면서 수많은 재벌이 쓰러졌고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양(量)의 문제가 아니라 질(質)의 문제다.
반드시 구조조정됐어야 할 곳이 그대로 있다면, 다른 부문의 구조조정이 양적으로 아무리 많이 되었다하더라도 구조조정의 효과는 미미하다. 기업부문의 거대 재벌, 금융부문의 은행, 공공부문의 거대 공기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국민의 정부는 과연 구조조정의 험난한 산을 넘을 수 있을까. 레임덕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고, 이해집단의 저항은 완강한데.. 여기서 많은 회의가 생긴다.
구조조정의 실질적 시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길어야 6개월이다. 이 근거는 향후의 정치일정에 있다. 2002년의 12월에 대통령선거가 있다. 5~6월에는 대선의 전초전으로 지방자치선거를 치러야 한다.
또 6월에는 국가적 에너지를 총동원해야 할 월드컵이 있다. 이 같은 일정을 소급해 볼 때 내년 하반기부터 정치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경제가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경제는 더 이상 발을 헛디딜 여유가 없다. 상황이 절박하다. 구조조정은 IMF체제 졸업의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라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6개월안에 이 골치아픈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진군의 마지막 기회다. 정부의 경제팀은 정신바짝 차려야 한다. 전투에 자신이 없는 장수는 말에서 내려 와야 한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북소리만 내지 말고 진군을 감행해야 한다. 국민들은 리듬이 깨진 북소리를 듣는데 너무 지쳐있다.
국민ㆍ주택은행의 합병은 이런 점에서 향후 구조조정의 중요한 시금석이다. 경제논리를 좇아 '원칙대로' 처리되어야 한다. 국내외 시장 관계자와 경제전문가들이 손에 땀을 쥐고 관전하고 있다.
이백만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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