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00년이 저물어간다. 의료계에서도 여러 가지 치료법과 건강법이 부침한 한 해였다.유행처럼 반복되던 비타민C 요법이 서울대 교수의 말 한 마디로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고 수중분만, 좌식분만 등 새 분만법의 도입은 철저히 의료진의 편의 위주로 진행되는 우리 분만 현실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먹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에 이어, 지방 흡수를 막아 살을 빼 주는 비만치료제 등 꿈의 신약들도 잇따라 소개됐다.
▲비타민C 사재기 소동
1.최근 서울대 의대 이왕재(해부학) 교수가 TV에서 비타민C의 효능에 대해 소개한 뒤 약국마다 비타민C 사재기 소동이 벌어졌다.
'비타민 소동'은 수년에 한번씩 유행처럼 나타나곤 했다. 비타민은 탄수화물 등 영양소가 에너지로 바뀌는데 필수적인 물질로 13가지 종류가 있다.
이 중 한 가지만 부족해도 인체 기능이 적절히 유지되기 어렵다.
특히 비타민C는 뼈를 튼튼히 하고 치아의 상아질을 형성하며 철분 흡수를 돕고 화상과 세균 독소에 저항력을 갖게 하는 기능을 한다.
비타민은 약으로 먹을 경우 체내 흡수율이 떨어지므로 야채, 과일, 곡류 등 음식을 통해 먹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하루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비타민C제를 따로 복용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비타민C는 수용성이어서 쉽게 배출되긴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담배할 때 화끈거리는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고 한다.
▲좌식분만, 수중분만 등 새 분만법 유행
2.지난 해 말 뮤지컬 배우 최정원(30)씨의 수중분만 성공 이후 전근대적인 분만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좌식분만 등 임신부와 태아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새로운 분만법이 잇따라 소개됐다. 수중분만은 임신부가 산통(産痛)을 적게 느끼고 출산시간이 단축되는 게 장점.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해 혈압 상승이 억제되며 회음절개술도 필요 없다. 비용은 60만원 정도(2박 3일 입원 기준)로 테이블 분만보다 다소 비싸다.
물론 수중분만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임신성 당뇨나 고혈압 등이 있는 임신부는 당연히 의사의 세밀한 관찰이 필요한 테이블 분만을 해야 한다.
미국에선 태아나 산모의 감염 위험을 높인다며 수중분만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수중에서 진통을 느낄 때 태아의 심박동이나 자궁수축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를 부착하기 곤란한 문제도 있다.
의자에 앉아 아기를 낳는 좌식분만도 일부 병원에서 시도되고 있다. 힘을 주는 방향과 중력의 방향이 일치해 아기를 훨씬 수월하게 낳을 수 있다고 한다.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는 "임신부가 쪼그리고 앉아 편안한 자세를 취하면 여러 모로 장점이 많다"며 "여성이 자신의 조건에 맞는 분만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분만문화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섹수술로 다시 주목 받은 근시교정술
3.엑시머 레이저로 시작된 시력 교정술이 라식(LASIK)수술을 거쳐 올해 라섹(LASEK)이 본격 도입되면서 다시 관심을 끌었다.
지난 해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라섹수술은 라식을 약간 변형한 것으로, 눈이 작거나 각막 두께가 정상보다 얇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안과 이재범 교수는 "각막의 상피세포층을 약간(50㎛)만 벗겨내고 레이저를 쏘기 때문에 통증과 각막흉터가 적고 시력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설명했다.
수술 후 하루 정도는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통증과 이물감이 나타난다. 스테로이드 성분의 인공눈물을 일정기간 사용해야 하는 불편도 따른다.
아직 미 식품의약국(FDA)의 공인을 받지 못했으며, 시술 대상도 -7디옵터 이하의 근시에만 국한된다.
▲살 빼는 약ㆍ독감 치료제 등 신약 도입
4.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달 22일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의 먹는 비만 치료제 '제니칼(Xenical)'의 국내 시판을 허용했다.
제니칼은 지방 흡수를 줄여 살을 빼주는 비만치료제로, 3년 전부터 미국, 유럽 등에서 시판 중이다. 국내에는 내년 2월께 선보일 예정.
기존 비만 치료제가 뇌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것과는 달리, 위장 안에서 지방 분해 효소인 '리파제'의 활동을 억제, 지방의 분해 및 체내 흡수를 방해하는 약이다.
그 결과 음식으로 섭취한 지방의 약 3분의 1이 소화되지 않고 변으로 배설된다. 매 끼 식사 후 한 알(120㎎)씩 복용하면 된다.
영국의 의학잡지 란셋에 보고된 임상시험 결과 체지방과 나쁜 콜레스테롤(LDL)의 수치를 떨어뜨려 심장병,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의 발생 위험을 낮춰준다고 한다.
복용 초기엔 복부 팽만감이나 설사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서양과는 달리 우리 음식엔 지방이 많지 않아 치료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올 겨울 국내에 선보인 독감 치료제 '리렌자'도 주목 받은 신약 중 하나. 영국 그락소웰컴사가 개발한 이 약은 독감 바이러스를 호흡기내 다른 세포로 확산되게 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독감 증상이 시작된 후 48시간 안에 쓰면 독감 앓는 기간을 크게 줄여주며, 소량을 4주간 사용할 경우 67~84%의 예방효과도 있다고 한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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