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풀이 친구집 부수다 친구 어머니에게 붙잡혀...떠난 지 꼭 사십년 만인 1989년 고향에 간 적이 있다. 경북 고령군 다산면 상곡동. 배로 강을 건너야 할 만큼 불편한 곳이라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없어졌을 뿐 골목길도 여전했고 말타기하고 놀았던 말바위도 그냥 있었다.
물은 마르고 없었지만 말바위 앞 작은 지당(연못)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지당 아래쪽에 있던 우리 집은 없었다. 여기저기 돌무더기에 잡초만 무성했다.
지당 위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그 곳에도 잡초만 무성했다. 싸리나무 울타리에 삽짝이 비스듬히 열려져 있어야 할 초가삼간은 흔적도 없었고 그 집에 살던 친구도, 친구 어머니도 없었다.
친구 어머니는 나 때문에 속을 참 많이 썩이셨다. 내가 걸핏하면 친구와 싸워 울려놓았기 때문이다. 일곱 살 되던 해의 어느날이었다.
친구 어머니가 상기된 얼굴로 우리 어머니를 찾아 오셨고 나는 어머니한테 몹시 야단을 맞았다. 절대로 매를 들지 않던 어머니라 때리진 않았지만 그처럼 화내시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 이튿날 나는 친구 집에 돌을 던졌다. 어머니한테 야단 맞은 것이 모두 그 집 탓이라 생각했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던졌다. 마당이고 지붕이고 틈만 나면 몰래 던졌다.
봉창이 뚫어지기도 하고 항아리까지 깨졌다. 화가 난 친구 어머니한테 멱살까지 잡혀 혼이 났다. 돌을 던지지 않았다. 그 대신 이번에는 낫을 들고 갔다.
싸리나무를 엮어 만든 울타리의 새끼줄을 툭툭 쳤다. 새끼줄이 끊어지고 울타리가 기울어졌다.
며칠 눈치를 보았더니 별일 없었다. 울타리도 다시 엮어져 있었다. 이번에는 사립문을 엮은 새끼줄을 쳤다. 새끼줄이 터지면서 가뜩이나 기울었던 사립문이 주저앉고 말았다. 더럭 겁이 났다. 그 때 누군가가 낫을 든 내 손목을 꽉 잡았다. 친구 어머니였다.
나는 눈을 감고 입술을 꼭 다물었다. 뺨이라도 맞을 각오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친구 어머니는 내 뺨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안하데이 삼시(아명)야. 내가 잘 못했데이, 이제 그만 맘 풀그라."
미안하다는 뜻밖의 말씀과 뭘 잘못하셨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만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고향에 다녀와서 어머님께 그런 일이 있었고 그 생각이 나더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님 역시 그 때가 생각 나신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집에서 귀한 물건을 잃어 버렸는데 그 걸 네가 훔쳐간 줄 알았는데, 나중에 그 물건을 그 집에서 찾았단다." 친구 어머님이 왜 미안해 하셨는지, 우리 어머님이 왜 그처럼 화를 내셨는지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이두호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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