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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석호를 살리자 / 당국 무관심에 무차별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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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석호를 살리자 / 당국 무관심에 무차별 파괴

입력
2000.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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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남해안 갯벌에 비교되는 동해안 생태계의 보고 석호(潟湖)가 잔혹한 개발에 의해 죽음의 호수로 변해 버렸으나 행정 당국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어 건강한 생태자원으로 되살릴 방법이 막연한 실정이다.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석호에 대해 아무런 법적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데다 호수를 정화한다며 실시한 일부 정책은 오히려 석호의 생태 파괴를 가속시키고 있다.

담수와 해수가 수시로 교류하는 석호는 재첩 숭어 멸치 황어 가물치 등 수십종의 고급 어패류가 대량으로 잡히는 어족자원 기지이다. 또 주변 산림에 수분을 공급하고 관광객과 주민에게 심미적 공간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 전문가들은 석호의 가치를 육상의 4~5배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동해안 석호는 각종 개발로 파괴돼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의 조사 결과 동해안 10개 석호 중 강릉시 풍호는 매립으로 완전히 사라졌고 속초시 영랑호 등 나머지도 심각한 부영양화에 시달리고 있다.

석호가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는데도 주무관청인 환경부의 무관심은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민간조류학자가 1980년대 고성군 화진호 등 4개 석호를 세계자연기금과 국제자연보호연합 보호습지목록에 등재 시켰지만 환경부가 90년과 지난해 각각 제정한 자연환경보존법과 습지보호법에는 보호지역으로 분류된 곳이 없다.

석호에 대한 지방환경청의 환경조사는 파괴가 극에 달해 강릉 경실련과 속초 환경련 등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한 97년에야 처음 시작됐으며 환경부의 석호 생태조사도 올해 화진포에서 처음으로 이뤄졌다.

지자체는 스스로 추진한 개발 사업으로 석호가 심각하게 파괴되자 정화사업을 벌였으나 과학적인 검토 없이 시행, 오히려 생태계 파괴만 부추겼다. 강릉시는 91년부터 경포호 준설사업을 해왔지만 수질은 여전히 등외 등급인 반면 96년부터 3년 동안 물고기가 떼죽음했다. 준설로 수초가 소멸하는 등 서식환경이 파괴되고 오염된 심층수가 수표로 떠올라 이 같은 사태가 촉발됐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분석이다.

조류학자 윤무부(尹茂夫) 경희대 교수는 "동해안 석호가 충분한 보호가치를 갖고 있으나 행정 당국의 무관심과 무지로 완전히 망가졌다"며 "보다 적극적인 보호책을 세우고 나아가 정밀한 복원방안을 마련해야 자연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조철환

chcho@hk.co.kr

■석호가 죽어간다

'동해안의 보석' 석호는 이미 사망 선고를 받았다.

어떤 것은 매립으로 흔적조차 희미하고 어떤 것은 물이 썩어 호수의 기능을 상실했다.

강원지역 주민들의 소외심리와 지방자치단체의 개발정책, 민간자본의 이윤욕구가 맞물리면서 석호는 속속 개발의 대상이 됐으나 그 결과로 생명력을 잃어버리면서 오히려 관광객 하나 찾아오지 않는 '죽음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라진 석호

강원 강릉시 강동면 영동화력발전소를 끼고 바다쪽으로 나가다 보면 1960년대 왕골 산지로 유명했던 풍호를 만나게 된다. 맑은 물이 담겨있던 이 호수에는 지금은 찐득한 회색빛 물체만 가득하다. 발전소가 호수 한가운데로 뻗어나온 관로를 통해 석탄재를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초 시작된 이 작업으로 호수 바닥에는 4m 두께의 폐탄이 깔려있다. 선조들이 이 호수에 기대어 살았음을 일러주는 선사유적지 팻말 하나만이 폐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과거를 되새겨주고 있다.

속초시 북쪽 고성군 토성면 봉포호(천진호)도 풍호의 길을 밟고 있다. 동해안 10개 석호 가운데 최소 규모인 이 호수는 현재 진행 중인 병원 부지 매립공사로 작은 연못이 돼버렸다. 호수에서 환경부 지정 보호야생종인 순채를 채취, 가공해온 장애인들의 작은 공장도 생산량 급감으로 더 이상 운영이 힘든 형편이다.

▲ 썩은 물만 남은 호수

속초 항구로 이용되는 청초호. 조선소 냉동창고 등의 폐수가 처리조차 안된 채 하수구를 통해 방류된다. 물은 어떤 용도로도 사용할 수 없는 등급외 수질이다. 설상가상으로 속초시는 13대 대통령 공약사업이라며 호텔 콘도 골프연습장 등을 유치하기 위해 680억원을 들여 호수의 20%에 가까운 24만㎡의 매립을 2년 전 끝냈다.

매립공사 이후 수만마리의 철새와 각종 어패류, 드넓은 갈대밭이 사라지자 물 속에서 영양염류가 과번식, 호수는 시궁창이 돼버렸다. 매립지에 조성된 공원에는 악취가 진동, 관광객은 물론 인근 주민들조차 외면하고 있다.

바로 옆 영랑호는 81~85년 한일레저가 개발공사를 진행, 숙박 레저시설이 들어섰고 90년대에는 아파트단지가 자리를 잡았다. 폐수처리를 하고 있지만 워낙 방류량이 많아 녹조현상이 연례적으로 되풀이된다.

강릉시 저동 경포호는 강릉시가 토사 퇴적을 막기 위해 66년 유입천인 안현천과 경포천의 유로를 변경, 호수에 생활하수와 농업용수만 흘러들게 되자 수질이 급격히 악화했다. 또 66년 호안공사와 81년 수초제거로 수생식물이 사라지면서 자체 정화능력까지 크게 저하돼 수질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 사라진 갯터짐

속초시 봉포호와 영랑호 사이에 있는 광포호를 7번 국도에서 내려다 보면 바다와 연결되는 부분에 짓다만 콘도가 흉물스럽게 서있다. 92년 착공됐다가 건설업체 부도로 건설이 중단된 이 콘도 때문에 광포호는 바다와의 연결고리를 잃어 버렸다. 석호와 바다가 접하는 곳에는 모래가 쌓여 있다가 장마철이 되거나 파도가 강해지면 담수와 해수가 교류하는 갯터짐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통해 석호는 깨끗해지고 바다에는 다량의 플랑크톤이 생기면서 생명력이 왕성해진다. 그러나 하구가 차단된 이후 이 같은 작용이 일어나지 않아 호수가 죽어가는 것이다.

▲ 살아있는 석호도 곧 개발

현재 동해안 석호 가운데 최대규모(231만㎡)인 고성군 현내면 화진포는 이승만(李承晩) 김일성(金日成) 별장이 있을 정도로 절경이 잘 보존돼 있는 석호지만 금강산권 개발과 연계, 레저단지 건립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2급수의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고성군 죽왕면 송지호에도 LG가 내년 골프장과 콘도 건설공사를 착공할 예정이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석호가치와 복원

동해안 석호는 담수생물과 해양생물, 그리고 담수와 해양 모두에서 살 수 있는 생물 등이 공존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석호는 특히 생물 종이 급격히 대량으로 나타나고 갑자기 사라지는 '격동의 생태구조'를 갖추고 있다. 국내 다른 곳에서는 이 같은 생태계를 찾아볼수 없다. 강릉대 생물학과 김일회 교수는 향호와 청초호에서 신종 요각류 (새우 가재 등 갑각류의 근종) 2종을 발견해 세계학회에 보고,석호만의 독특한 생태구조를 입증하기도 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생태구조로 인해 석호의 생산력은 육지의 4~5배에 달하며, 고니 수리 등 수십종의 여름·겨울철새들이 중간기착지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망가질 대로 망가진 석호의 당면과제는 보존이 아니라 복원이다. 석호 복원의 핵심은 하천에서 담수가 유입되고 바다와의 갯터짐을 통해 해수가 밀려드는 등 민물과 바닷물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지질학적 특성을 되살려 자정능력을 갖게 하는데 있다.

석호의 복원 방안과 관련.수초제거 및 준설을 놓고 생태학자와 호소학자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준설 등 인공적 수질개선 방법을 택했던 강릉시의 경우 지난해부터 수초 인공식재,유입천 복원계획 수립 등 자연정화능력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했으나 예산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떤 방안을 선택하든 생태학자와 수질 호소학자들의 총제척 연구를 통한 과학적 조사와 복원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그러나 1998년부터 원주 환경청이 상지대 등 3개대와 합동으로 벌이고 있는 석호조사조차 예산이 여비 수준에 불과,총체적인 연구와는 거리가 있다./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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