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에 걸친 마라톤 협상끝에 유엔이 23일 미국의 분담금 비율을 줄이고 한국 브라질 등 18개 개발도상국의 비율을 높이는 새 재정개혁안을 승인했다.유엔 189개 회원국 대표는 이날 마지막까지 합의를 거부한 한국 대표가 막판에 이의를 철회한 뒤 재정개혁안에 합의했다. 매년 분담금 1,050만 달러를 내고 있는 한국은 미국의 분담금 감축 방안의 여파로 회원국중 최고인 85%인상을 요구받자 이의를 제기했었다.
이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장관에게 이날 새벽 각각 급하게 전화로 협조를 요청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스티븐 보즈워스 주한 미국대사와 리처드 홀부르크 유엔주재 미국대사 및 유럽주재 미국 외교관들도 협조요청에 총동원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유엔총회는 10억달러에 이르는 유엔 행정비용 중 미국의 분담 비율을 25%에서 22%로, 30억 달러의 유엔 평화유지비용 중 미국 분담 비율을 30%에서 27%로 각각 깎아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투표없이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1973년 이래 27년간 논의돼온 유엔 재정개혁안은 자국의 분담금 비율을 깎아내리려는 미국 정부와 이로 인한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개발도상국들의 반발이 맞서 오랫동안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미국은 현재 13억 달러에 이르는 분담금을 체납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9억2,600만 달러밖에 승인할 수 없다는 방침을 굳히자 분담금 비율을 줄이기 위해 8개월에 걸쳐 로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22일 미국의 언론 재벌 테드 터너가 3,400만 달러를 정부 대신 내겠다고 나섰고 이 돈으로 분담금 감축액 일부를 보충할 수 있게 되면서 일단 합의의 물꼬가 열렸다.
그러나 '신흥 부유국'이라는 이유로 비율이 인상돼 부담이 늘어난 국가들은 전 세계 GNP(국민총생산액)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을 볼 때 이번 결정은 불공정하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이번 재정개혁안으로 한국과 브라질의 분담금 인상율이 가장 높아졌으며 중국도 50%이상 인상됐다.
이밖에 싱가포르 칠레 이란 체코 폴란드 태국 러시아 등의 분담금이 인상됐다.
지금까지 미국에 이어 20.5%로 두번째 많은 분담금을 냈던 일본은 0.9% 삭감됐으며 유럽연합(EU)은 기존 수준을 유지했다.
아난 사무총장은 이번 합의로 유엔 내 긴장을 유발했던 주요 요인이 사라졌다면서 "우리는 미국 행정부와 정상적이고도 건전한 관계를 추구할 수 있게 됐으며 유엔은 더욱 튼튼한 재정기반 위에서 새 세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국이 제안해놓고 의회에서 승인하지 않은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과 함께 국제적 위상에 걸맞지 않는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 사례로 꼽혀온 유엔 분담금 회피는 국제사회의 미국에 대한 실망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익우선과 제한적 국제 개입을 내세우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의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윤정기자 y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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