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궁 김수녕(29ㆍ예천군청)이 2000시드니올림픽 단체전에서 올림픽기록을 갈아치우며 우승하자 AP통신은 올림픽사의 불가사의중 하나로 표현했다.은퇴 7년의 공백을 딛고 '신궁'의 면모를 과시한 게 외국기자의 눈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88서울올림픽에서 개인ㆍ단체전을 석권,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 개인전 은메달을 따낸 후 93년 은퇴선언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졌던 김수녕의 복귀는 우연의 산물이었다.
94년 결혼과 함께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지난 해 6월. 불쑥 양궁협회를 찾은 김수녕은 황도하 사무국장에게 실내양궁경기에 필요한 장비구입을 부탁했다.
심심풀이로 실내양궁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국군체육부대에서 활시위를 당기던 김수녕을 지켜본 장영술 국가대표팀 코치(상무감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무소속 남자선수들과 대등한 솜씨를 과시했기 때문이었다. 장 코치의 권유와 협회 임원들의 설득으로 김수녕은 지난 해 10월 현역복귀 결단을 내렸다. 이어 한달뒤 시작된 대표선발전에서 김수녕은 악전고투했다. 주위의 비아냥에 후배들의 도전도 만만찮았다.
올 6월 김수녕은 최종선발전에서 후배 강현지(22ㆍ강남대)를 1점차로 제치고 8년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하지만 "후배 앞길을 가로막고서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따기만 해봐라"는 말이 시드니에서 쾌거를 이룰 때까지 귓전에 맴돌았다.
9월20일 시드니올림픽 개인전 결승에서 후배 윤미진(17ㆍ경기체고)에게 밀려 3위에 그친 김수녕은 22일 단체전에서 개인통산 4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수녕은 시상대위에서 93년 은퇴와 함께 아끼던 활 2대를 갖고 고향 청주로 내려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사용했던 것과 93년 은퇴 직전까지 쓰던 활이었다. '영원한 양궁인'으로 남기를 바라던 김수녕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정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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