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너무나 갖고 싶은 마음에,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지었습니다."24일 충남 천안경찰서 형사계 피의자 대기실. 신생아를 훔쳐 달아났다 붙잡힌 A(30ㆍ여ㆍ충남 예산군)씨가 고개를 숙인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A씨는 4년 전 인천에서 남편(36)을 만났으나 워낙 어려운 살림으로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올 봄 그렇게 기다리던 첫 아기를 가졌다. 더구나 여름에 예산으로 이사하면서 돼지사육농장에 취직, 살림도 한결 나아졌다. 아기는 태어나기 전부터 모든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일거에 씻어주는 '복덩이'가 됐다.
그런 A씨에게 올해 8월 유산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본인의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 출산일을 매일 꼽으며 기다리는 남편과 시어머니(77세)에게 차마 사실대로 얘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주위를 속이기로 마음먹은 A씨는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옷을 겹쳐입어 배가 부른 것처럼 위장하고, 집안을 온통 유아용품으로 채웠다.
사건 당일인 21일 A씨는 "출산하러 병원에 간다"고 집을 나선 뒤 '범행대상'으로 물색해 두었던 산부인과 의원으로 향했다.
분만대기실에서 산모 김모(30ㆍ아산시)씨의 어머니에게 접근, 주위에 가족으로 보이게 한 뒤, 출산 직후 "이모"라고 간호사를 속이고는 아기를 건네받았다. 그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간 A씨는 가족과 친지들의 축하를 받으며 잔칫상까지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컨테이너 박스에 살만큼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 A씨 가족이 준비해둔 유아용품들은 온통 최고급들이었다"며 딱한 표정을 지었다.
이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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