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치킨 런' 보러 가자" "엄마, '포켓몬스터'는 언제부터 하는 거야?" "난 '102 달마시안' 볼래"아이들이 먼저 안다. 올 겨울에 상영하는 자신들의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이들이 먼저 고른다. 자신이 좋아하고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그래 놓고는 조른다. "그래, 방학 하면 가자."
올 연말 '어린이ㆍ가족극장' 은 유난스럽다. 이맘때는 으레 찾아오는 디즈니영화 말고도 성인의 호기심까지 잔뜩 자극하는 영국 점토 애니메이션 '치킨 런', 프랑스 애니메이션 '키리쿠와 마녀' 에 세계적 선풍을 일으킨 일본의 '포켓몬스터' 도 영화로 둔갑해 찾아왔다. 어린이 SF물 '쥬브나일' 까지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할까. 전문가들은 권한다.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라. 가능하면 가족 전체가 의논해 결정하라. 가능하면 부모도 보고 싶고 볼만한 것을 골라라. 절대 마지못해 아이를 따라가는 태도는 취하지 마라. 아이들이 왜 보고 싶어하는지 사전에 영화에 대한 정보를 가져라.
■ 포켓몬스터-"복제된 강력한 뮤츠를 막아라"
왜 '포켓몬' 만 나오면 난리를 칠까. 분명이 이유가 있다. '텔레토비'가 성 구분이 엄격하지 않은 아이들의 세계를 반영했듯, '포켓몬스터' 에 열광하는 것도 종(種)별 번식 개념을 모르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이해하면 별난 것도 아니다.
다른 동물끼리, 동물과 식물끼리 결합해 나타난 피카츄, 이상해꽃, 마릴, 리자몽, 토게피 등은 아이들에게 괴물이 아니다. 사랑스런 상상의 캐릭터들이다.
'피카츄의 여름방학' 에서는 그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포켓몬 놀이공원에 모인다. 처음에는 서로 다투던 그들이 서로 친하게 된다. '뮤츠의 역습'(감독 유야마 구니히코)은 복제와 변종의 이야기이다.
마치 '쥬라기 공원'의 공룡처럼 전설적인 포켓몬 뮤의 화석에서 DNA를 채취해 복제한 강력한 뮤츠와 그를 막기위해 나타난 순진하고 귀여운 뮤가 대결한다. 1999년에 만들어 미국에서 8,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작품. '피카츄의 여름방학'이 유아용이라면, '뮤츠의 역습'은 오히려 누와르적이기까지 하다.
■ 102 달마시안-자신을 개라고 생각하는 앵무새
"야, 너는 강아지가 나는 것 봤어? 난 못 날아" 개와 함께 살고 있는 앵무새는 자기가 개 인줄 안다. 정체성에 혼돈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혼돈이 늘 문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개만 보면 잡아서 코트를 만들려던 악녀 크루엘라(글렌 클로즈). 3년간 감옥에서 개와 정신치료를 받은 크루엘라는 이제 개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개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런던 탑의 종소리가 크루엘라의 뇌파를 바꾸기 전까지 문제는 없었다. 크루엘라가 다시 예전의 그로 돌아온 순간, 달마시안들에게는 위기가 닥친다. 게다가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르펠(제라르 드파르듀)까지 합세해 달마시안을 잡아 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그는 사랑스런 애견가 사이몬(엘리스 에반스)의 달마시안을 모두 납치하지만 달마시안과 '날아다니 개' 앵무새가 힘을 합쳐 결국 대탈출에 성공한다. '얼룩없는 달마시안'의 주도로 말이다. 크루엘라가 거대한 빵으로 변하면 아이들은 통쾌해 한다.
■ 키리쿠와 마녀-모험 가득한 흑인소년의 여행
아프리카에도 모험 가득한 동화의 세계는 있다. 아이는 어머니 뱃속에서 "날 세상으로 내보내 주세요" 라고 씩씩하게 말한다. 스스로 탯줄을 끊고 태어난 아이는 마을을 황폐하게 만들고, 아버지를 포함한 마을사람들을 잡아간 마녀 카라바에게 도전한다.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는 물신(物神)을 거느린 잔인한 마녀의 저주를 없애고 마을을 다시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현인들이 사는 '금지된 산'으로 떠나는 흑인 소년 키리쿠의 모험에 가득찬 여행.
이 아프리카의 전설을 프랑스 감독 미쉘 오슬로가 5년간 공을 들여 애니메이션으로 완성시켰다. 화가 루소의 화폭을 연상시키는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아프리카의 자연의 아름다움, 아프리카 전통악기만을 사용한 원시적인 음악. 확실히 유럽의 애니메이션은 할리우드 것과는 다르다.
아이들 영화에 가슴을 훤히 드러낸 아프리카 여성들이 나온다고 얼굴을 찌푸리지 말라. 감독은 "만약 브래지어를 그려넣는다면 그들을 조롱하는 것이 된다"는 감독의 말이 맞다. 또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본다.
■ 저니 오브 맨-가슴이 꽉차는 아이맥스 영화
아이맥스 영화라고 눈만 즐거워야 할까. 63 아이맥스 영화관이 겨울방학에 준비한 '저니 오브 맨' (감독 키스 맬턴)은 가득한 눈으로 보는 인생 이야기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환상과 모험의 여행을 하면서 성장하고, 인생이란 종착역을 향해 간다. 동굴의 북 공연, 바다 수중발레, 숲속 요정들의 서커스 공연이 은유적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보아왔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오락이나 자연의 경관 소개에 그쳤던 아이맥스영화의 개념을 깨버린다. 철학적이다.
동굴에서 태어나 바다와 숲과 황야를 거치면서 소년은 그 자연이란 무대에서 기쁨과 두려움과 용기와 믿음과 사랑의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몸짓을 만난다.
그 환상과 역동의 놀라움과 아름다움, 역동과 조화 속에서 아이들은 인생이 무엇인지,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눈 만이 아니라 가슴이 꽉 차는 듯한 느낌. 아이맥스 영화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올 아이맥스영화의 아카데미상인 GSTA MAC Award 최우수작품상, 촬영상 수상작이다.
■ 쥬브나일-우주에서 로봇이 떨어지고
소년(Juvenile)은 미래를 만났다. 2000년 여름방학 시골 캠프에서 유스케(엔도 유야)와 3명의 친구는 우주에서 떨어진 올빼미처럼 생긴 작은 로봇 테트라를 발견한다.
자꾸만 뭔가를 만들려는 테트라. 그 로봇의 정체는 뭘까. 천재발명가 청년 칸자키를 찾아가도 알 수가 없다. 이상한 우주외계인이 나타나 테트라를 찾고, 그들은 지구의 바다를 통째로 가져갈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쥬브나일' (감독 야마자키 다카시)은 전형적인 어린이 SF영화면서 성장영화의 구도를 가진다.
어린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믿고, 인간이 아닌 대상과 우정을 나누고, 자신들의 용기와 협동으로 지구를 위기에서 구하고, 20년 후에 다시 만난 로봇과 주인공들이 그 시절로 돌아가는 훈훈한 이야기이다. 아이들의 연기가 어색하고, 황당한 구석이 있지만.
이대현기자
leedh@
박은주기자
leedh@
■평론가 유지나. 아이들과 함께본 '치킨 런'
아이들과 영화를 보는 건 신나는 일이다. 어른들은 무감하게 넘기는 장면에도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웃거나 환호하며 다이나믹하게 이미지와 소통하기 때문이다. 하품과 슬픔, 웃음은 전염된다고 하는데, 아이들 웃음소리를 옆에서 듣다 보면 나도 어느새 덩달아 웃게 된다. .
아이들과의 영화보기에 맛을 붙인 후 나는 아이들 대상 가족용 영화는 어떤 수를 내서든지 함께 보도록 시간을 내곤 한다. 행동을 잘해야 '치킨 런' 을 보여준다고 며칠동안 아이들 앞에서 분위기를 잡은 후 드디어 20일 극장으로 갔다.
'월레스와 그로밋' 을 비디오로 수십번 보아서인지 아이들은 이 유머러스한 치킨을 금새 알아본다. 살벌한 계란농장이 엽기적인 치킨파이 공장으로 변하는 것을 계기로 닭들의 자유를 향한 엑소더스 과정이 우여곡절 속에 펼쳐진다.
악당과 선인, 아니 착한 닭의 대립구조는 누가 봐도 뻔한 것이지만, 탈출전략을 모의하는 과정이나 마침내 설계도를 기초로 비행기까지 만들어내는 닭들의 과학적 사고가 보는 이의 허를 찌른다.
아마도 이쯤에서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인의 후예, 로빈슨 크루소를 가진 나라에선 기계만들기가 식은죽 먹기처럼 일상화한데 감탄하게 된다.
큰 애는 특히 닭들이 만든 이 어설픈 수동 비행기가 좌충우돌하며 이륙해서 마침내 할리우드 대형 액션영화에나 나올 법한 공중 격투신에서 환호성을 올린다.
다른 영화에서도 빠른 액션장면만 나오면 좋아하는 큰 애의 신나하는 얼굴을 보노라면 '톰과 제리'식 액션이야말로 영화보기 재미의 핵심이 아닌가, 하는 느닷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은 그림일기에 나는 수탉 록키를 그려 놓고는 그 밑에 " '치킨 런'은 좋은 영화"라고 써넣었다. "왜 좋은 영화니?" 라고 묻자, 대답인즉, "재미있으니까" 이다. 나도 물론 동의한다.
동료애와 약자의 단결정신, 모험심과 과학적 사고, 관습 파괴적인 사고등... 누구에게나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주요한 덕목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는 이 점토 에니메이션을 아이들과 보는 건 좋은 경험이다.
/유지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