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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 음식과 세상 - 음식의 원조와 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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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 음식과 세상 - 음식의 원조와 케첩

입력
2000.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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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원조(元祖)'따지기 좋아하는 민족이 따로 있을까. 먹거리도 예외는 아니다. 원조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이 식당가의 오랜 풍토. 거리의 간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갈비나 곰탕부터 해장국에 낙지, 족발, 심지어 그 흔한 떡볶이나 찐빵까지. 모두들 '원조'나 '진짜 원조'의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면 뭔가 경쟁에서 밀린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다.

원조만을 내세우는 식당 주인이나 식도락가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음식에서 '원조는 없다'.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이, 다양한 변주와 짬뽕(융합)만이 존재할 뿐이다. 제2의, 제3의 창조로 원조보다 더 유명해진 원조도 셀 수 없이 많다.

서양의 포크 커틀릿을 흉내내 대중화에 성공한 일본 돈가스가 그렇고, 얇고 바삭바삭한 이탈리아의 원조 피자보다 지구촌에 훨씬 더 널리 퍼진 미국식 팬피자가 그렇다.

음식의 원조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케첩'이다. 서양 소스의 대명사로 통하는 케첩은 본래 중국에서 유래했다. 1690년대 남부 중국인들은 어류에 식초와 소금, 향신료 등을 가미해 톡 쏘는 소스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를 '케치압(Ke-Tsiap)'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정작 이 중국의 토속 양념을 상품화해 돈을 번 이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었다.

미국의 종합식품회사 하인즈를 창업한 헨리 존 하인즈는 싱가포르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된 중국 케치압의 조리법을 활용해 1876년 세계 처음으로 '케첩(Ketchup)'을 상용화했다.

어류 대신 토마토 과육을 넣고 설탕과 소금, 식초 등으로 맛을 낸 현재의 케첩을 탄생시킨 것.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진 이 색다른 소스는 금세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하인즈는 세계 케첩 시장의 3분의 1과 미국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케첩의 원조'로 군림하고 있다.

지구촌 전역에서 13만 명이 이 회사의 케첩을 구입하며, 400g 들이 케첩 병을 나란히 세웠을 때 지구 6바퀴를 돌고도 남는 양이 매년 소비된다고 한다.

남의 것을 철저히 연구해서 '원조를 능가하는 원조'를 만들어낸 결과다. 세계화와 퓨전의 시대에 '내 것'과 '원조'만을 고집하는 것은 너무 편협하다. 어느 외국기업이 한국의 고추장이나 된장에 보편적인 맛을 덧입혀 상품화에 성공한다면 그 별난 소스의 원조는 과연 어디가 될까.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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