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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베트남의 역사와 민족적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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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베트남의 역사와 민족적 자존심

입력
2000.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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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기이한 옛 이야기베트남은 우리에게 여전히 전쟁과 공산혁명, 그리고 1980년대의 개방 정책인 도이모이(刷新)로 기억되는 나라다. 이는 우리의 무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 남쪽에 있는 '변방의 나라'라는 선입견이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박희병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옮긴 '베트남의 기이한 옛 이야기'와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은 이같은 우리의 좁고 섣부른 인식을 통박한다.

두 권의 책에 실린 각종 전기(傳奇)소설과 신화, 전설, 야사를 찬찬히 읽다 보면 베트남의 역사는 금세 중국의 침략주의에 맞선 도전과 웅비의 역사가 된다. 중국 주변에 이 정도로 힘차고 도도한 저항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있었다는 게 가슴 벅찰 정도이다.

'베트남의 기이한 옛 이야기'는 16세기 전반 베트남의 문인 완서(阮嶼)가 창작한 한문 소설집 '전기만록(傳奇漫錄)'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20편의 이야기가 수록된 이 작품은 베트남 고전소설의 걸작이다.

첫 편 '항우의 변명'에서부터 중국의 영웅 항우(項羽)를 거세게 몰아붙인다. "초 상장군 송의를 처형한 것은 임금을 업신여긴 잘못이고, 항복한 진 황제 자영을 죽인 것은 용맹하지 못한 일이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칼로 의제를 강에서 죽인 일은 어찌 영웅이 할 일이었던가."

'열녀 예경'과 '두 신령의 다툼'에서는 중국 명 왕조의 침략에 맞선 저항적 민족주의가 선명히 드러나고, '기이한 나무꾼'에서는 당시 베트남 내부의 왕위 찬탈과 부패한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숨어있다.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은 14세기 후반부터 필사본으로 유포되다 15세기 후반 무경(武瓊)이 새로 편찬한 '영남척괴열전(嶺南?怪列傳)'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여기서 '영남'이란 베트남이다. 당시 민간에 전승되던 신화와 전설, 야사 22편을 담은 이 책에는 중국 상고시대까지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의식, 은 왕조의 군대를 궤멸시킨 민족적 자존심이 생생히 살아있다.

박희병 옮김, 돌베개 발행

김관명기자

kimkw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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