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축구인들은 거스 히딩크 감독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곤 하는데 대부분 그가 경험이 많고 노련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한번은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98년 월드컵때 일인데 한국과 네덜란드가 경기(한국이 0_5로 참패)를 앞두고 같은 운동장에서 연습을 했었지요. 그런데 그때 네덜란드가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을 더 훈련해 한국팀이 차질을 빚었는데 왜 그랬습니까."
그러자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그랬습니다"며 빙그레 웃었다고 한다.
기다리는 팀은 기분이 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에 대한 껄끄러움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심리전까지 계산하는 그의 치밀함에 새삼 경탄했다. 이 위원장은 또 그의 노회함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18일 대한축구협회와 정식계약 후 가진 기자회견서 일본의 한 기자가 2~3분동안 장황하게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질문을 던지자 통역에 앞서 "당신 말이 맞다"며 이야기를 끝내더라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일본의 트루시에 감독을 떠올렸다. 트루시에 감독은 언론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신뢰를 받고 있다) 4월 한ㆍ일전에서 패한 뒤 경질설에 시달릴 때 하루는 한 기자가 한마디 듣기 위해 트루시에 감독의 집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1만엔을 기자의 주머지에 쑤셔 넣으며 "그럴 시간이 있으면 이 돈 가지고 커피나 마시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의 격정적 성격을 드러낸) 이 이야기는 두고 두고 화제가 됐다.
이번 한ㆍ일전을 앞두고 트루시에 감독은 히딩크 감독에게 "신념을 갖고 목표를 끝까지 밀고 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트루시에 감독이 훌륭한 지도자이고 자신에 대한 불신을 딛고 일본팀의 수준을 끌어올린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런 충고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히딩크 감독이 트루시에 감독보다 노련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니까.
두 감독의 운명은 2002년 월드컵서 어떻게 바뀔까. 정반대 성격의 두 감독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유승근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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