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땐 역시 연륜이다.'수적 열세로 패색이 짙던 한국을 살린 일등공신은 바로 노장 홍명보와 김병지였다. 이날 한ㆍ일전으로 A매치(국가대표간 경기) 114경기에 출전, 국내 최다출장 기록을 세운 홍명보는 초반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 공ㆍ수를 조율했다.
하지만 김상식의 퇴장으로 다시 '본업'인 스위퍼로 돌아섰다. 후반 일본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는 길목엔 어김없이 홍명보가 버티고 있었다.
한편 현란한 색상의 긴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김병지는 멀리서 보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머리를 짧게 깎고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머리는 폼으로 깎은 것이 아니었던 지 전반 18분 야나기사와의 페널티킥을 막아냈고 후반 37분께 마쓰다와의 골문앞 1대1 상황에서도 동물적인 감각으로 선방, 완벽한 실점위기를 넘기며 '두 사람'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의 이름앞에 '역시'라는 감탄사를 다시한번 떠올릴 정도로 그의 존재가치를 한껏 빛낸 홍명보와 애지중지하던 '꽁지머리'를 자르면서까지 투혼을 발휘했던 김병지. 이들의 활약상은 노병의 역할을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김주성 관전평
내용면에서 나무랄데 없는 경기였다. 한국이 전반부터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 선수들의 적극적인 수비 덕분이었다. 일본선수가 공을 잡으면 미드필드부터 2~3명이 에워싸고 상대의 패스를 적극 차단했다.
그러나 최후방의 '3백' 라인은 다소 미흡했다. 일본 스트라이커 야나기사와를 잡지 못해 위기를 몇차례 허용했고 김상식의 퇴장까지 나오게 됐다.
일본의 수비진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런 결점에도 우리 수비진이 이 경기를 통해 그동안 부족했던 지역방어를 대인방어와 잘 조화시켜 비교적 무난한 경기를 펼쳤다.
전략전술의 중요성, 즉 지역방어 형태의 효과를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김상식의 퇴장이후에도 비교적 대등한 경기를 펼친 한국은 후반들어 무너졌다. 수적 열세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 특유의 플레이가 살아난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일본의 좋은 플레이는 튼튼한 미드필드진의 조직적인 움직임과 한 템포 빠른 패스에서 나온다. 우리 선수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동점골을 넣은 왼쪽수비수 핫토리는 세트플레이가 아닌 순간에서도 적극 공격에 가담했는데 이것은 한 명이 퇴장 당해 마크맨이 없어졌기때문이다. 다만 일본의 수비형 미드필더들과 양쪽 풀백진의 유기적인 위치변동도 배워야 한다.
GK 김병지의 선방이 큰 힘이 됐지만 10명이 싸우고 그 정도 버텨냈다는 점과 안정환의 개인기와 시야의 향상, 이을용의 발굴(프로축구를 통해 이런 선수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등은 칭찬하고 싶다.
김상식의 퇴장만 아니었다면 어떻게 결말이 났을까. 국민도 선수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까.
김주성 부산 아이콘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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