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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출판 문학상 / 저작상

입력
2000.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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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학 - '고구려 고분벽화연구' 전호태교수인문과학 저작상 수상작인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사계절 발행)가 5월 출간됐을 때 역사학계는 물론 한국 고대사에 관심이 있던 일반 독자들은 깜짝 놀랐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중국의 오지와 북한 땅에 산재한 현실에서 300여 장의 벽화사진과 정확한 위치, 여기에 장의(葬儀)예술로서 벽화를 꼼꼼히 해석한 국사학자의 노고가 선명히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전호태(41) 울산대 박물관장은 이 책을 위해 18년을 쏟아 부었다.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에 진학하면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에 매달리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모두 말렸다.

북한은 물론 중국조차 가지 못하는 당시 연구 환경과, 고구려에 관한 서적과 보고서가 '불온문서'취급을 받던 국내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면 먹고 살기 어렵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만류도 있었다.

고분벽화 연구 개척에 자부 극우적 역사 재해석은 위험"

"'고분벽화 연구'라는 새로운 역사학 장르를 개척했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그나마 부끄럽지 않은 기초자료를 만들었으니 이제는 전문학자들이 이 자료를 갖고 전문단계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역사학의 기초자료를 내놓기 위해 18년 전 초심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책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주로 생활풍속을 그린 1기(각저총, 감신총), 연꽃무늬 장식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2기(동명왕릉, 통구 12호분), 사신도가 전면에 나서는 3기(강서대묘, 무용총)로 나눴다. 이렇게 다룬 고분벽화가 모두 100개이다.

"고구려는 군사대국이기 전에 문화 강국이었다"는 게 이 책을 관통하는 그의 주장이다.

"요즘 역사학이나 고대사 책들이 지나치게 극우방식으로만 한국 고대사를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0여년 동안 근대화를 추진한 끝에 찾아온 피곤함이나 허전함 때문이겠지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심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도가 극단으로 치닫다 보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는 법입니다. 역사학자나 일반 독자 모두 진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 중서문하성재신 연구(박용운 지음, 일지사)

고려시대 천문사상과 오행설 연구(이희덕 지음, 일조각)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한국 현대정치사 서설' 진덕규교수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현대적 민족주의를 제대로 받아들인 적이 없습니다. 그 이론구조가 채 갖춰지기도 전에 마르크스주의나 종속이론이 한 시대를 풍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민족주의, 민족국가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진덕규(62) 이화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사회과학 저작상 수상작인 '한국 현대정치사 서설'(지식산업사 발행)에서 또 한번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1980년 '현대 민족주의의 이론구조'라는 책을 낸 지 꼭 20년 만이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민족주의 없는 정치사회'가 국내적으로는 억압과 강제를 강요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구조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같은 지역블록도 넓은 의미에서 민족주의가 스스로를 변용시킨 형태입니다. 식민지 지배체제 편입으로 인해 근대적 민족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 현대 정치사의 큰 불행이죠.

지금부터라도 '시민사회적 민족국가'를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왜곡된 현대 정치사를 바로 잡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민사회적 민조국가 지향 현대 정치사 바로잡아야"

책은 다른 정치사 연구서처럼 광복 이후 현대 정치사를 통시적으로 살폈다. 하지만 '미군정청 하지 중장의 한국인 고문의 성격 분석'이나 '국보위 상임위 분과위원장 명단 분석'등 많은 구체적인 자료를 활용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실증적 자료를 통해 현상을 해석하고 논리를 세워야 한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다. 그는 이를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국회회의록이나 공문서, 신문 등을 모아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현재 방학을 이용해 자료수집 차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이 책이 현대정치사에 대한 총론이었다면 앞으로 나올 책은 고대국가의 등장과정 추적이나 미군정의 성격 분석 등 각론의 성격을 띨 것"이라며 "내가 쓴 책이 후학들의 인문ㆍ사회 과학 연구에 참고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저작상 본심 진출도서

국제회의 참가와 협상(임홍재 지음, 지식산업사)

생명공학 시대의 법과 윤리(박은정 지음, 이화여대 출판부)

정치사상사(이수윤 지음, 법문사)

한국의 명문 종가(이순형 지음, 서울대 출판부)

근대 한국의 국가사상(김효전 지음, 철학과 현실사)

금융환경 변화와 통화정책(함정호 등 지음, 지식산업사)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정치와 삶의 세계' 김우창교수

김우창(64) 고려대 대학원장은 저작상 수상 소식에 "자격이 없는데 이 상을 받아도 될 지 모르겠다"고 겸손해 했다. 어렵게 읽혀지는 그의 많은 저서들과는 달리 소박함이 묻어났다.

인문과학 저작상 수상작 '정치와 삶의 세계'(삼인 발행)는 그의 섬세한 사유와 정교한 글쓰기가 어우러진 역작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편입된 1997년 무렵부터 올 4월까지 '당대''역사비평''철학과 현실'등 여러 잡지에 기고한 13편의 글을 모았다. 그의 관심은 당시 경제위기 속에서 경제와 도덕의 관계를 재조명해보는 일이었다.

그는 "투명성을 보장하라"는 외국 금융자본의 요구에서 우리의 도덕성 문제를 떠올렸다.

단순히 규범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도덕이 아니라, 통계나 평가 보고서 따위를 정확히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도덕이다.

"이상위해 작은 도덕을 무시 정치.경제 부패의 원인으로

'폭압적인'근대화 과정 속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성실성이나 냉정함 같은 여러 도덕적 가치들의 회복이야말로 '작은 삶의 행복'을 가능케 하는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큰 이상을 위해 너무나 많은 작은 도덕들을 무시해왔습니다. 대의명분을 위해 사소한 잘못은 용서될 수 있다는 생각도 만연돼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우리 정치와 경제 부패의 근원이 아닐까요."

그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자명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고,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 수 있는 일상이다. 그것은 또한 작은 모임에서부터 예절이 존중되는 사회, 학벌이나 지위 같은 집단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행복이 우선되는 사회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 예절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 책에 실린 '문명화와 예절'이라는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세계화 과정에 있는 한국 사회를 미세하게 다듬을 수 있는 것이 예절이라는 시각이다.

"인간은 합리성의 규범보다는 예절 같은 일상적 규범 속에서 살아갑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사회에서 예절은 '더불어 살아가는' 행동규범이기도 합니다.

저작상 본심 진출도서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김용석 지음. 푸른숲) 한국의 집 지킴(김광언 지음. 다락방)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심사평

심사평

"올해도 질과 양 풍성한 수확 출판계 고심분투 재확인"

출판문화는 한 나라의 지적 생산력과 문화적 성숙성의 수준을 잴 수 있는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척도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50년간 '책 읽는 사회'로서 자랑할 만한 독서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킨 적이 없고 근자에 들어서는 '정보시대'의 구호가 오히려 책을 우습게 아는 풍조를 퍼뜨리고 있지만, 정보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토대는 여전히 도서와 출판이다. 견실한 출판문화 없이 창조적 정보의 시대는 오지 않는다.

제41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심사위원들은 우리 출판계가 2000년 한 해에도 수백가지 어려운 조건 속에서 꾸준히 출판의 질과 양을 지켜가기 위해 고심분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 노력에 깊은 경의와 애정을 표함과 동시에 '상'이라는 것이 출판계의 노고를 반영하고 인정하는 데 늘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저작상 자연과학 부문에서 수상작을 뽑지 못한 것은 선정위원들의 능력 부족 탓일 터이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시사교양 세 부문에서 수상작을 얻게 된 것을 심사위원들은 기쁘게 생각한다.

이 저술들은 우리 사회가 거둔 한 해의 수확이되 그 연찬과 사유의 깊이는 '한 해'를 넘어 학문 영역에서는 연구의 수준을 높이고, 사회적으로는 문화적 성찰의 능력을 심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내구적 공공재가 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진덕규 이화여대 교수의 '한국현대정치사 서설'은 저자가 이 분야에서 진행시켜온 오랜 연찬이 이제 그 절정의 순간에 내놓기 시작한 중요한 학문적 성과를 담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특히 유심히 관찰한 것은 이 저술에 담겨있는 학문적 성찰의 각도, 문제의식, 정치사적 관점이다.

비록 반쪽의 형태이지만 1948년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 국민국가가 출범한 것이 한국인에게 왜 그토록 '시시한' 사건처럼 보이는가라는 것은 정치사 연구가 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학문적 의제이면서 사회적 성찰의 화두다.

지난 반세기의 한국 정치사 기술은 이 점에서 한국인에게 20세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어야 하며, 정치적 실패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성찰이어야 한다. 진 교수의 노작은 이런 질문들과 문제의식을 깔고 있어 일반 독자에게도 '필수적' 읽을거리가 된다.

칼 야스퍼스가 '정치에 의한 윤리의 정지'라는 말로 요약한 현대 정치의 도덕적 파산이 그 가장 문제적이고 추악한 면모를 과시한 곳의 하나가 한국 정치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정치가 공공선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기보다는 그 자체가 일종의 '악'이 된 사회는 있는 힘을 다해 이 문제적 상황을 성찰해야 하며, 정치와 삶의 문제를 사유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김우창 고려대 교수의 '정치와 삶의 세계'는 이런 성찰 작업에 더없이 긴요한 인문학적 사유의 한 절정을 보여주는 저술이라는 점에서 비록 '시사교양'에 분류되기는 했지만 지난 한 해의 인문학적 성과를 대변한다.

전호태 울산대 교수의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는 이 분야 연구의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문헌 섭렵과 가능한 거의 모든 조사활동으로 난관을 뚫으면서 독보적 연구를 수행한데다, 회화사적 층위에 인류학적이고 종교학적인 통찰까지를 첨가함으로써 더 빛을 발하는 역작이다.

여타 저작상 후보작들은 그 상당수가 말이 후보작이지 사실은 수상작으로 밀 수도 있는 성과물이었다는 것도 부기해두고 싶다.

기타 출판상 수상작들을 모두 고르게 언급할 지면이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한길사의 '위대한 책(Great Books)'번역 시리즈는 최근 나라 안팎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전(canon)'시비에 관계 없이 인류 공유의 정신적 자산들을 우리 사회에 소개하려는 단단한 결의를 보이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짧게나마 언급하여 사회적 인정을 표하고자 한다.

/심사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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