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는 토요일마다 '만남'이라는 기획기사가 실린다. 두 사람이 만나 우리 사회의 현안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9일 '만남'난에서 한국수양부모협회 박영숙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고아원에서 아이를 자라게 하는 것은 아동학대"라고. 아이가 셋인 나는 이 말을 십분 공감한다.
엄마가 일 때문에 늦게 들어가서 며칠만 눈을 못 맞춰줘도 아이들 몸에 기운이 쪽 빠져있는 게 보이는데 어린 것들이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면서 자란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박회장은 세계 75개국이 고아원을 없앴으며 우리도 입양ㆍ수양부모들이 버려지는 아이들을 떠맡도록 정책을 지원하면 고아원을 없앨 수 있다고 했다.
비록 친부모가 돌보지는 못하지만 버려진 어린이들에게 가정의 따사로움은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아원'으로 불리는 아동보육시설의 실태를 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아동보육시설에서 사는 어린이는 1만7,820명인데 이들에게 올해 배정된 예산이 579억여원이다.
한해동안 어린이 한 명에게 325만원을 쓰는 셈이다. 이토록 번듯한 예산을 갖고 있으면서 왜 이들을 고아원에서 키워야 할까. 이 같은 지원을 수양부모에게 해준다면 수양부모가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지금도 한국수양부모협회에는 아무런 지원 없이도 남의 어린이를 거두는 이들이 200여명이나 된다.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명확했다. 아동이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시설에서 자라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수양부모가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시설을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정부도 위탁가정(수양부모)제도를 만들어서 올해부터 1,700여명의 아동이 위탁가정에서 살고 있으며 위탁가정으로 지정되면 월 6만5,000원의 양육보조금과 아동실태에 따른 생계비 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말인즉 옳다.
그러나 정작 예산은 보잘 것이 없었다. 올해 소요된 중앙정부 예산이 9억7,000만원 남짓이니 아동 1명당 연 57만원이 배정된 것이다. 지방정부 예산을 포함한다고 해도 결국 지원은 양육보조금 정도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착한 일을 하는데 왜 지원을 받으려 하느냐고 말할 수는 없다. 어린이가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고아원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를 위해 정부가 정책을 바꿔 지원할 수 있다면 나서야 한다.
위탁가정 양육이 시설양육보다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둔다면 직무유기이다. 적어도 그 한 명의 어린이에게는 평생이 걸린 일이다. 정부 차원에서 위탁가정 지원 중심으로 정책을 대전환해야 한다.
이나마 수양부모 대책은 나은 편이다. 입양부모 대책은 더 형편없다. 입양할 사람이 180만~200만원을 내야 한다.
정부지원이 없는 입양기관은 이 돈으로 시설을 운영한다. 그러니 이렇게 왜곡된 정책을 버려두고 국민의식이 낮으니, 도움의 손길이 사라졌니 하는 '의식개조론'이나 '온정타령'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국가는 착한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게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서화숙 여론독자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