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북녘의 성탄절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질문처럼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없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탄절을 아는 북한 주민이 별로 없고, 설사 알더라도 그 분위기를 즐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나의 어버지(67)는 해방 전 평양 창동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해방 직후 평양 성화신학교에서 기독교를 공부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서 북한을 떠날 때(1997년)까지 아버지로부터 예수나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부모 자식간에도 이렇게 신앙을 숨기고 있는데 들어내놓고 종교 행사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 주민에게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다. 아직도 나는 예수, 교회, 종교 등의 말을 떠올리면 두려운 생각부터 든다. 북한 교육 탓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고, 제국주의자들의 무기라는 교육을 귀가 닳도록 들었기 때문에 예수, 기독교, 교회를 생가하면 섬뜩한 생각이 든다.
탈북 직후 아버지가 중국에서 땀을 흘리면서 요한복음을 암송하고, 찬송가를 부를 때 "내 아버지가 저런가" 싶을 정도로 무서움에 떨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감정이 상당히 가셨다. 북한 교육에서 성탄절이 언급되는 것은 인천상륙작전 후 미군이 압록강으로 진격하면서 '성탄절은 본국에서'라는 구호 아래 전투에 임했다는 게 전부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성탄절은 아예 기억에 없다. 있다면 '미국의 명절' 정도로 기억된다. 그러나 12월24일은 북한 주민이 누구나 기억해야 할 날이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어머니 김정숙(金貞淑)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학생과 어린이들이 이 날을 기념하는 갖가지 공연과 행사에 참여하므로 자연 흥겨운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성탄절을 기억하는 세대도 북한에 적지 않다. 해방 전 기독교 세력이 강했던 평양과 평안도에 살았던 노인 세대는 아직도 성탄절을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들었지만 아버지도 성탄절 때면 혼자 묵상하고 기도를 올렸다고 했다. 또 외국에 자주 나다니는 외교관과 무역일꾼들도 성탄절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성탄 분위기를 즐길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평양에서 탈북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성탄절에는 평양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에서 조촐한 기념예배가 진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외부에 보이기 위한 행사일 뿐 진정한 성탄의 의미는 없다.
●이애란(李愛蘭ㆍ36)
1964년 평양에서 태어난 이애란씨는 양강도 혜산시 경공업전문학교와 평양북도 신의주시 신의주 경공업대학을 졸업한 뒤 1990년부터 국가계획위원회에서 일했다.
1997년 8월 아버지 어머니, 3명의 동생, 아들과 함께 탈북했다. 탈북 후 생명보험회사 보험설계사 등으로 일하다 지난 10월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토끼탕, 오리탕 등을 취급하는 북한 영양식 전문점 '씀바귀네 집'(02-3471-5459)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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