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씨가 민주당 최고위원직을 사퇴함으로써 여권의 인적 물갈이에 시동이 걸렸다. 그의 퇴진을 계기로 집권당과 정부에 인적 쇄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김대중 대통령이 다짐한 국정 쇄신의 바탕이 인적 쇄신에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저간의 사정이 어떠하든 권노갑씨가 퇴진을 결심한 것은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는 사퇴의 변에서 "나라와 민주당의 장래, 김 대통령의 국정 개혁의 성공을 위해 결심을 하게 됐다"고 밝혔는데,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가 계속해서 집권당의 주요직책을 맡고,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권의 실세로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입장이 된다면, '나라와 민주당의 장래'또는 김 대통령의 국정 개혁에 결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높다.
이런 견해는 이미 민주당, 나아가 동교동 가신그룹내에서 조차 제기된 것으로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권씨가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한 것은 이른바 가신정치의 적폐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충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세간에는 알게 모르게 가신정치의 적폐를 걱정했던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정권 가신그룹의 문제는 이미 전 정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그로 인해 지금껏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동교동 사람들이 당 관계자들의 문제제기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여권 수뇌부가 이런 뜻을 가감 없이 받아들인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치인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일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퇴진을 결심하기까지 권노갑씨는 무척 고심 했으리라 짐작된다. 권씨는 김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에 기구한 정치역정을 겪어야 했다. 사퇴의 변에서 순명(順命)이라고 한 그의 심경을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그는 이 순명을 일정 기간 유지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다. 김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그는 2선이 아니라 그 보다 더한 3선 4선에 머물러 관조의 여유를 갖기를 사람들은 바라고 있는 것이다.
권노갑씨가 물러 남으로써 여권은 당정의 면모를 바꾸는 데 운신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여권은 정권을 새롭게 출범시킨다는 비장한 각오로 국정쇄신의 틀을 잡아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정의 인적진용을 새롭게 갖추는 일이다. 집을 개축하려면 기둥 뿌리부터 바꿔야 하듯, 정권의 기둥 자리를 바꾸는 문제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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