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장관급회담 결과에 대한 관측통들의 평가는 야박하다. 당국은 경협추진위 구성에 합의하고 이산가족 사업 일정을 확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지만 한편에서는 남측 의제 대부분이 관철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특히 전력지원 문제는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을 듯 하다.▦전력 지원
남북은 '26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에서 전력 협력을 비롯해 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 등을 협의, 해결한다'고 합의했다. 북측은 26일 남북경협위에서 전력협력 문제를 우선 의제로 올려놓았고, '해결'이라는 유리한 문구를 공동보도문에 삽입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은 "전력 문제는 북측에 준다고 (약속)한 것이 없으며, 향후 경협추진위에서 협력 방안을 연구할 것"이라며 어떠한 언질과 사전약속이 없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번 2차 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이 '식량차관 제공 문제를 검토하여 추진한다'고 합의한 뒤 식량 50만톤을 지원한 전례가 연상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협의ㆍ해결한다'는 문구는 지원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북측의 의도라고 지적한다.
정부 당국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올 3월 베를린선언을 통해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지원을 언급한데다 전력문제는 북측이 원하는 제1사업이어서 불가피하게 논의될 것"이라며 "그러나 이 문제를 단시일 내에 결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경제여건과 국민동의 여부 등을 감안, 가급적 시기를 조절해 전력협력 문제를 결정할 방침이라는 얘기다. 전력지원 문제는 당분간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해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재정립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6일 남북경협추진위는 전력지원 문제에 대한 남북간 공방으로 난항을 겪을 듯하다.
▦이산가족 사업
핵심인 면회소 설치ㆍ운영 문제와 3차 적십자회담 개최 일정이 공동보도문에 빠져 있다. 서신교환 사업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당국의 의욕은 '시범적 추진' 수준으로 축소됐다. 또 내년 설(1월24일) 이전에 3차 방문단을 교환하자는 남측 주장이 2월말로 밀리는 등 일정 재조정에서 북측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국군포로 결의문 등
'당당하게 임하겠다'고 장담했던 남측 대표단은 국회의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결의문'을 북측에 전달하지 못했다. 남측은 15일 북측에 이 결의문을 건넸으나, 북측 관계자는 이를 읽어 본 뒤 "접수할 수 없다"며 곧바로 되돌려 주었다.
남측은 또 장충식(張忠植)한적 총재에 대한 북측 비난, 남측 취재기자 활동제한 등에 할 말은 다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양측이 6ㆍ15공동선언 이행에 장애가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한다'는 합의만 이끌어 냈다.
오히려 장재언(張在彦) 북측 위원장은 회담기간 중 "남북화해의 걸림돌은 제거돼야 한다"며 장 총재를 거듭 비난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