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너무 막히는 군요. 전에는 이 때 쯤이면 백화점 바겐세일 시간이 끝나 잘 뚫렸는데." "백화점들이 장사가 안 돼서 밤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어서 그럽니다." 얼마 전 밤 늦은 시간, 버스 운전사와 승객은 이렇게 대화를 시작했다.두 명 모두 50대 중반이었는데, 승객은 특별한 직업이 없는 것 같았다. 옆에서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단편적이지만 서민들은 최근 경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었다.
■"IMF 초기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아십니까. 당시에는 갑작스런 것이어서 그래도 저축이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바닥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허리 띠를 졸라맸지만, 차츰 경기가 풀리고 벤처 붐이 불면서 증시에 뛰어들기 시작했거든요.
그 결과 지금은 깡통을 차고 있습니다. 지금이 IMF 초기보다 더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승객은 설명했다.
■운전사가 고개를 끄떡이자 승객은 말을 계속했다.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한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식으로 처음엔 재미를 봤지만 얼마안가 거의 날리고 아파트를 줄여 이사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요즈음 '어떻게 한 탕을 해서 만회를 하나'라는 생각 뿐 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으니 사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가식 없는 밑바닥 민심은 이러했다. 유명한 경제전문가로부터 듣는 분석보다 더 설득력 있게 가슴에 다가왔다.
■며칠 전 여당 지도부는 민심 체험을 나갔다가 기겁을 했다고 한다. 그 정도까지 민심이 나쁠지는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당의 대표는 지갑에 돈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물건을 사고 옆에서 돈을 빌려 지불했다. 평소에 돈 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심 알기'는 절대로 어렵지 않다. 일부러 계획을 공표하면서 찾아갈 필요는 더욱 없다.
그러면 왜곡된 민심을 들을 수도 있다. 그냥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 그것이 바로 민심이다.
/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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