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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法治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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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法治로 가는 길

입력
2000.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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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가 처음 혼돈에 빠졌을때 나는 미국을 '이상한 나라'라 고 생각했다. 대선과 함께 치뤄진 지방선거에서 선거 20여일전에 사망한 후보가 버젓이 미주리주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주지사가 당선자의 미망인을 의원대행직으로 임명했다는 기사를 읽었을땐 더욱 놀랐다.]죽은 사람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차점자가 그 말도 안되는 절차를 규정한 연방법에 승복한다는 사실을 나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미국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의 저력'을 보기 시작했다. 11월 10일 투표를 한 지 한달이 넘도록 대통령 당선자를 결정짓지 못하는 혼란속에서 인내심을 견지하며 법의 판결을 기다리는 미국인들에게 공연히 주눅이 들고, 때로는 그들의 인내가 무시무시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 상상만으로도 역감정과 정당 구도 아래 한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한국인들은 '민중봉기'로 하루이틀안에 결판을 냈을 것이다.

곳곳에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고, 울분을 못이겨 분실자살하려는 사람이 몇명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정부는 서둘러 재검표를 실시하고 , 다시는 혼선의 여지가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하겠다는 약속을 했을것이다.

플로리다에서 수검표를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법정투쟁을 계속해온 고어는 14일 연방법원의 수개표 위헌 판결이 나오자 깨끗하게 패배를 받아들였다.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지만 국민의 단합과 민주주의를 위해 폐배를 인정한다. 이번사태로 미국은 약점을 드러낸게 아니라 강한 나라임을 보여줬다"고 그는 연설했다.

미소를 잃지않으면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자"고 호소하는 그의 연설은 상처입은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되살려 주기에 충분했다.

패자가 먼저 연설한지 1시간후 부시는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고어의 용기있는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미국인들의 강한 의지와 준법 정신에 감사했다.

"지난 5주간의 대립과 갈등을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을 향해 나아가자"고 그는 호소했다. 연방대법원의 스티븐스판사는 소수의견에서 "올 대통령선거의 승자는 확언할수 없지만 패자는 확실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라고 말했다. "연방대법원으 판결은 명백한 정치개입"이라는 비난도 나왔다. "부시의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이며, 취임과 함께 레임덕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패자일수밖에 없었던 이번 대선 파동에서 미국은들은 '준법정신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 승리의 힘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단합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왔다.

미국이 이번에 대선파동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자신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그들만큼 인내심이 없는가.

우리는 왜 법이 최종 판결자임을 인정하지 않는가. 우리는 왜 종종 폭력적 시위로 민주주의의 원칙을 뒤엎으려는 유혹에 빠지는가 …수많은 자성(自省)의 질문앞에서 우리는 이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더 큰 책임을 물을수 밖에 없다.

국민은 물론 스스로 성숙해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러나 국민의 이성(理性), 준법정신, 제도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것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법이 권력아래 있고, 지도자들이 법을 우습게 아는 나라에서 법의 판결을 기다리는 국민의 인내심을 기대할 수는 없다.

8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부시정부의 출범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에 대해서 여야 모두 저울질에 앞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그것이 미국의 대선파동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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