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신고 작년 6만건 불구 과태료·행정처분 한건도 없어서울시내 H의료원에 근무하는 의사 김모(36)씨는 최근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다 앞서 가는 시내버스가 새까만 매연을 내뿜는 것을 발견하곤 곧바로 자동차 번호를 적어 서울시 인터넷 환경신문고에 신고했다.
그러나 환경을 지켰다는 뿌듯한 기분은 잠시. 며칠후 그는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출근길에 자신이 신고했던 번호판을 단 똑같은 버스가 여전히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김씨는 서울시 담당자로부터 "시민들 신고는 고맙지만 이를 근거로 과태료를 매길 수는 없다"는 해명을 들은 뒤 더욱 허탈해졌다. 애써 신고한 자신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쓰레기통으로 가는 신고정신
대기오염을 줄여 보겠다는 시민들의 소중한 신고정신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지고 있다.
매연차량 신고는 연간 수만여건에 달하지만 시민신고만으로는 과태료나 행정처분 등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시민들의 매연차량 신고건수는 모두 6만2,470건. 이는 1997년 2만601건, 98년 3만5,239건에 비하면 2년만에 3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올해에도 지난 6월 한달동안 5,697건을 비롯, 10월까지 모두 3만9,919건이 접수됐다.
이처럼 시민들의 매연 신고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시민들의 신고가 실제로 과태료나 행정처분으로 이어진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이는 현행법상 5만∼50만원의 매연 과태료나 차량 운행정지 등을 내리려면 반드시 객관적 물증이 필요하기 때문.
매연차로 신고된 운전자가 시를 상대로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제기할 경우 근거가 없으면 시가 패소하기 때문이다.
팔짱만 끼고 있는 서울시, 구청
이에따라 인터넷, 전화, 팩스, 우편 등을 통해 매연차 신고가 접수돼도 시는 접수된 사실만 해당 자치구에 통보해줄 뿐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자치구에서도 매연차 운전자의 차를 점검, 과태료를 부과하는 대신 신고가 접수된 사실만 운전자에게 알려주고 있는 실정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객관적인 매연점검 등을 위해 구청까지 나오라고 해도 강제성이 없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또 매연차량 차주가 민원을 제기하면 대응할 방도가 없어 사실상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각 구청이 팔짱만 끼고 있는 틈을 타 서울시의 매연차량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시 본청 및 자치구의 1997년 매연차량 적발건수는 2만423대였지만 98년에는 3만3,919대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4만3,208대가, 올해에는 지난 10월까지 3만5,099대가 적발됐다. 시민들의 '체감 매연차량'은 이보다 훨씬 많다.
김씨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면 도대체 신고는 왜 받느 것이냐"며 "시민들의 신고정신을 십분 활용해도 부족한 판에 서울시가 안일하게 면피성 행정만 일삼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입력시간 2000/12/1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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